서정욱 < 한국이동통신 사장 >

1984년 4월부터 서대전 전화국에서 시험 서비스에 들어간 시범 인증기
(TDX-1X)는 운용자인 한국통신(KT)과 합의된 규격 없이 제작된 것이라
2년간의 재개발 과정을 거쳐야 했다.

이동안 나는 "요람에서 무덤까지" 책임지는 순기 관리(Life Cycle
Management) 개념으로 연구 개발, 시험 평가, 품질 보증, 생산 조달, 시설
공사, 운용및 폐기는 물론 연구소(ETRI)의 개발 환경, 기업체의 생산환경,
운용자의 보전 환경 등 하드웨어의 형상 관리및 소프트웨어의 버전 관리,
교육훈련, 국사환경, 접지 공법에 이르는 세부 사항까지 관리했다.

심각한 문제였던 전원은 CAD/CAM 등 최신의 기술과 생산 설비를 갖춘
전문업체인 동아전기를 육성해 해결했다.

이로써 1986년 3월 시험 생산기(TDX-1) 2만4천회선을 전곡(금성) 가평
(삼성) 무주(오텔코)및 고령(대우)지역에 개통하고, 1987년 2월에는 양산기
(TDX-1A)를 개통했다.

그러나 전화 서비스의 자동화와 광역화, 그리고 적체 해소라는 사회적
요구가 날로 거세지자 KT는 농어촌을 위해 스웨덴의 전전자 교환기 AXE-10
을 우선 도입하기로 했다.

물론 TDX가 개발되면 공급을 중단한다는 전제를 달긴 했지만 당시만 해도
우리나라가 국설 전자 교환기를 개발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또 외국 업체들도 어떠한 조건이라도 한번 발을 들여놓기만 하면 한국의
시장을 휩쓸수 있다고 믿었을 것이다.

그 무렵 1AESS(금성)및 M10CN(삼성)조립 업체들은 그 후속 기종으로 5ESS및
S1240의 도입을 서두르고 있었다.

TDX-1A는 자동 호분배 장치(TDX-ACD)와 집단 교환기(TDX-CPS)에 활용됐으며
행정 통신망을 구성하면서 ISDN(종합정보통신망)기능도 실현했다.

그러나 본격적인 ISDN의 구축과 각종 부가 서비스를 제공할 우리나라의
표준형 전전자 교환기 개발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였다.

이에 1987년부터 1991년까지 5백60억원을 투자해 10만회선 용량의 TDX-10을
개발하게 됐다.

그러나 TDX-10이 상용화되기까지는 TDX-1A가 가진 용량의 한계 때문에
중소도시에 5ESS나 S1240 같은 교환기를 도입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이들이 대량 공급된 뒤에는 TDX-10이 개발되더라도 들어갈
자리가 없어진다는 사실이었다.

따라서 5ESS와 S1240이 도입되기 전에 2만3천회선의 중용량 교환기(TDX-1B)
를 개발해 중소도시에 공급해야겠다는 발상을 하게 되었다.

TDX-1이 AXE-10 가격의 협상무기였던 것처럼, TDX-1B는 5ESS및 S1240
도입에 유리한 협상 여건을 마련해 주었다.

나는 5ESS및 S1240에 대한 시험평가도 맡았다.

이 시험평가를 통해 서비스의 표준화 등 유례 없이 소프트웨어 분야의
결함까지 찾아내 국내업체들의 기술 전수및 가격 협상에 유리한 입지를
확보했으며 조립 수준에 머물던 국내업체들과 기술 전수에 인색한 외국업체
의 자세도 바꾸어 놓았다.

5ESS와 S1240에 대한 시험평가의 목적은 단순한 기능이나 원가의 확인이
아니라 첨단 시스템에 대한 친화를 통해 기술 정보를 수집하고 기술을 전수
받을 국내업체에 유리한 가격 협상의 여건을 조성해 주는 것이었다.

교환기는 연구 개발도 어렵지만 운용자의 요구를 기술, 문서화하는 것도
결코 쉽지 않다.

시험평가 자체가 고도의 기술이기 때문에 5ESS및 S1240에 대한 지식은
TDX-10 개발에는 물론 시험 평가 및 품질 보증 기법을 터득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됐다.

5ESS 및 S1240의 현장 운용 시험 평가가 끝난 1987년 초부터 개발이
본격화된 TDX-1B는 1988년 말에 개발을 마칠 수 있었다.

TDX-1B의 성공은 중소도시에 들어갈 5ESS 및 S1240의 물량을 감축했다.

만약에 TDX-10계획이 없었더라면 5ESS나 S1240도입을 보다 더 서둘렀을
것이며 RDX-1B가 없었더라면 중소도시에까지 도입 기종이 들어가 교환기의
국산 개발은 도중에 좌초되고 말았을 것이다.

나는 KT 생활에서 사업 관리 못지 않게 품질 보증 활동을 중요시했다.

외국기종이면 그대로 믿고 쓸 수밖에 없었던 과거와는 달리 업체들의 품질
보증 이행 계획서를 받아 생산 계획을 사전에 평가할 수 있었으며 하드웨어
및 소프트웨어 등의 설계 배경도 확인하게 됐다.

오늘날에는 ISO 9000 시리즈 같은 국제 품질 인증 획득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기업 홍보에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지만 초기에는 품질 보증에 대한
업계의 반발이 거셌다.

우리는 업계의 대표들을 대상으로 품질 보증 제도의 필요성과 효과에 대해
수차례 설명을 가짐으로써 궁극적으로는 제품의 불량률 감소와 품질과
신뢰성 제고, 생산 원가 및 비용 절감에 기여한다는 사실을 주지시켰다.

그 효과가 차츰 현실로 나타나자 한때 TDX에 대해 냉소적이거나 회의적이던
사람들도 TDX-1B 개발에 적극 호응하는 한편 업체들도 구매자인 KT의 요구를
성실히 수용하고 도입 교환기의 가격 협상에도 확고한 자세를 보였다.

사실 5ESS 및 S1240이 들어갈 중소도시에 TDX-1B가 들어감으로써 업체들은
국산 개발에 대한 인식을 달리 하게 되었으며 나아가 각자의 상표를 붙여
수출해 보겠다는 의지도 갖게 되었다.

아울러 TDX-1B의 개발은 업체의 연구개발을 연구소 주도에서 업체간의
협동으로 발전시킬 수 있었다.

TDX-1B의 업체 공동 개발은 업체들로 하여금 이른바 면허 생산을 통한
기술 자립은 하나의 허구로서 자체 연구 개발의 노력 없이는 조립 기술의
소화로 끝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었다.

TDX-1, TDX-1A, TDX-1B로 이어진 자체 연구 개발의 노력은 교육 훈련및
운용 보전 면에서도 기술 자립의 성과를 얻었으며 엄청난 교환기 획득 비용
을 절감하고 TDX-10 개발의 전망도 밝게 했다.

특히 TDX-1B는 업체에 대한 물량 배정에서 기술 경쟁을 통한 인센티브를
부여함으로써 구매 제도를 혁신했다.

TDX-10은 90년말 내가 KT를 떠난 후에야 개발을 마무리했다.

이 단계에서 운용자와 업체의 TDX 영웅들은 성공적인 상용화를 위해 성능과
신뢰성, 가격, 운용, 보전면에서 혼신의 노력으로 최적화 작업을 했다.

생산 현장과 운용현장 상황에 어두울 수밖에 없는 연구소는 개발 마무리
단계에 이르자 능력의 한계를 드러내면서 고객이자 운용자인 KT와 이용자인
국민을 만족시켰는가 하는 의문이 제기되기도 했다.

고객 만족이란 첫째 요구한 시스템의 성능과 신뢰성이 보장돼야 하고,
둘째 가격의 국제 경쟁력이 있어야 하고, 셋째 운용 유지 보전 시스템
개선을 위한 기술 지원을 하는 것이다.

다행히도 TDX-1B 개발 때부터 업체들은 연구소 의존에서 벗어나기 시작
했으며 소프트웨어의 개량과 부가 서비스 개발도 원활히 이루어졌다.

연구소와 업체들의 공동 개발에도 문제가 없는 것이 아니다.

시작부터 끝까지 연구소에 의존하려는 업체가 있는가 하면 연구소를 따라
가다가 KT의 요구에 맞추지 못하고 상용화가 안되겠다고 판단, 독자적으로
나가는 업체도 있었다.

공동 개발로 시작한 TDX-10개발은 사업이 진전됨에 따라 업무 분장과
책임 소재가 달라졌다.

TDX-10에서 특기할 것은 연구소가 개발한 원천 기술이다.

연구소는 정식 교환기 운영체계(OS)를 독자적으로 개발하여 TDX-10,
TDX-10A, TDX-PS 등에 적용했고 최근에는 국내에서 개발된 CDMA(부호분할
다중접속) 셀룰러시스템의 교환기(MSC)에 적용함으로써 소프트웨어 기술에서
한국을 빛냈다.

그때부터 나는 업체들에 책임 의식이 희박하기 쉬운 공동 개발을 지양하고
모든 것을 각자 책임진다는 각오로 실용 시험에 임하도록 했다.

인증 시험 단계에서 표출된 문제들도 각자 해소하도록 했다.

이로써 연구소의 기술 전수 문제는 저절로 해소되었다.

또 각자 소프트웨어 및 하드웨어의 개량에서도 독창적인 노력을 통해 가장
앞선 업체는 가장 많은 물량을 확보하고 표준으로 채택되도록 했다.

실용 시험 상용 시험의 단계에서 완전 자립의 태세를 갖추고 선입 선출의
원칙에 따라 시장 진입의 선후가 결정되는, 즉 납기와 물량을 연동시키는
인센티브를 주었다.

이같은 노력에 힘입어 업체들의 자립도는 TDX 개발 사업이 진전될수록 크게
성장했다.

도입 기종과는 달리 TDX-10은 KT와 합의하면 개량 개발이 가능하도록 했다.

이에 따라 각 단계별로 전개되는 연구 개발 시험 평가 품질보증 생산 운용
등 기술 활동도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고도화됐다.

TDX사업에 참여해서 얻은 나의 보람은 농어촌용을 대도시용으로, 연구소
주관에서 업체 주도로,또 국내 수요 충족에서 수출 상품으로 발전시키고
수많은 중소기업을 육성한 것이다.

현재 TDX의 설치 물량은 TDX-1A 2백여개 시스템에 1백10여만 회선, TDX-1B
3백40여개 시스템에 4백80여만 회선, TDX-10및 TDX-10A 1백30여개 시스템에
4백10여만회선에 달하고 수출도 2백여만 회선을 20여개국에 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자칫하면 외국의 교환기로 뒤덮일 우리의 시장을 이 정도로 지킬 수
있었다는 것은 우리 모두의 자랑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최근에 KT가 주도해서 TDX-10을 TDX-10A로 시스템을 개량했다니
여간 반갑지 않다.

역사는 사실과 기록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TDX 개발도 겉으로는 순탄하게 계획대로 진행된 것처럼 보이지만, 그
과정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피를 말리는 고통 절망 좌절 갈등 고뇌도 있었다.

특히 무명의 젊은이들이 흘린 땀이 있고 희생한 삶이 있었다.

지금 우리가 읽어야 할 것은 겉으로 드러난 기록이 아니라 그 행간에
가려진 사연과 숨은 뜻이다.

나는 TDX의 영웅들을 영원히 잊을 수가 없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0월 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