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옥이 베개 두 개를 포개어 허리를 받치고 앉아 어깨숨을 쉬어가며
자견을 비롯한 시녀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자견아, 내가 지금까지 지은 시들을 다 모아가지고 오너라"

"설안아, 너는 화로에 불을 피워라"

자견이 시고들을 넣어두는 문갑을 열어 한 무더기 종이 두루마리들을
들고 왔다.

대옥이 자기가 지은 시들을 한번 훑어보더니 옆으로 밀어놓았다.

"자견아, 일전에 보옥 도련님이 나에게 준 헌 손수건 있었지?

거기에도 시를 적어두었잖아.

그 손수건도 가져와"

대옥이 평소에 아끼던 그 손수건이 어디에 있나 하고 자견이 장롱을
열어보니 거기 다른 옷가지들과 함께 단정히 개켜져 있었다.

자견이 그 손수건을 대옥에게 가져다주면서 손수건에 적혀있는 대옥의
시를 흘끗 읽어보았다.

눈물은 자꾸만 고여 흘러넘치누나 남몰래 흐르는 이 눈물 누구를
향한 것인가 그대의 눈물 묻은 손수건 받고 보니 나 또한 사랑의
슬픔에 젖지 않을 수 있으랴 그러니까 그 손수건은 사랑의 슬픔으로
보옥과 대옥이 흘린 눈물이 함께 묻어 있는 셈이었다.

대옥은 손수건에 적힌 시를 멍한 눈길로 읽어보더니 그 시구절대로
주르르 눈물을 흘리면서 두손으로 손수건을 찢으려고 하였다.

하지만 손이 떨려 손수건을 찢을 수가 없었다.

"아가씨, 왜 이러세요?

아가씨가 아끼던 손수건을 찢으시다니요?"

자견이 황급히 대옥의 손에서 손수건을 빼앗으려고 하였다.

그러자 대옥이 설안이 막 피워놓은 화로불에다 손수건을 던져버렸다.

숯이 타는 냄새와 함께 명주 수건 타는 냄새가 방안에 가득하였다.

자견이 손을 뻗어 손수건을 화로에서 꺼내려고 하다가 대옥의 몸이
휘청하며 쓰러지는 바람에 우선 먼저 대옥을 부축하였다.

화로 옆에 앉아 있던 설안도 갑자기 닥친 일이라 당황해 하며 어쩔 줄을
몰랐다.

그 사이에 손수건은 대옥의 심장인 양 오글라들면서 작은 불꽃을 피우며
시커멓게 타버렸다.

"설안아, 창을 좀 열어놔.

냄새가 빠져나가게"

자견이 설안에게 지시하고 대옥을 다시 침상에 뉘려 하였다.

그러나 대옥은 정신을 가다듬으려고 머리를 흔들며 옆에 놓인 시
두루마리들을 가리켰다.

자견은 대옥이 그 시 두루마리들도 화로에 던지면 어쩌나 하고 조마조마해
하며 그것들을 하나씩 대옥에게 펼쳐보였다.

조금 전에 훑어 본 그 시들을 대옥은 다시 한번 꼼꼼히 읽어나갔다.

그 시들을 통하여 자기가 살아온 일생을 반추해보는지도 몰랐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0월 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