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파 3분전, 빨리빨리 뒤로 빠져"

"여봐 최기사, 저 친구들 속히 이동시켜"

"지난번에도 한 친구가 어정대다가 다쳤다고 말이 많았잖아"

공사인력들, 그중에서도 베트남 현지노무자들의 안전을 더 점검하는
이충규 현장소장의 외마디에 가까운 고함소리가 날카로운 휘슬소리와 함께
공기를 가른다.

잠시 정적이 흐른뒤 "꽈과광" 하는 요란한 발파음과 함께 10층 아파트
높이의 석산 한귀퉁이가 흔적도 없이 주저앉아 버린다.

현장에는 곧이어 불도저 5대가 "그르르릉"하는 굉음을 내며 정리작업에
나서고 발파현장옆에 설치된 암석 파쇄기도 갈아진 돌들을 쏟아내기
시작한다.

극동건설이 베트남 수도 하노이 남쪽 110km 지점인 욕사이(Doc Xay)에서
다시 178km 남방의 빈(Vinh)을 잇는 구간의 국도 1호선 확장 및 개보수
공사의 탄호아 메인베이스캠프옆 공사현장의 한 모습이다.

베트남에서 하노이와 호치민(구 사이공)을 잇는 1번국도는 우리의
경부축이나 마찬가지다.

국가경제의 가장 중요한 동맥인 것이다.

이런 이유로 베트남전쟁당시 하노이를 중심으로 북부의 1번국도와 주요
교량들은 미군의 중요한 폭격대상이 될 수 밖에 없었다.

모든 전쟁물자가 이 길을 통해 남쪽으로 향했기 때문이다.

그 1번국도를 베트남정부가 세계은행과 아시아개발은행차관을 얻어 확장
및 개보수공사를 하고 있고 극동건설은 욕사이와 빈구간을 맡아 공사에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의 1번국도는 사실 도로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지못하다.

한마디로 멀쩡한 구석이 거의 없다.

포장은 부스러졌고 구멍난데도 워낙 많다.

단적인 예로 하노이에서 탄호아베이스캠프까지 152km를 가는데 걸린
시간이 무려 5시간20분.

길에 오토바이와 자전거 우마차의 대열이 워낙 많아 그렇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 어떤 차라 해도 속력을 제대로 낼 수 없는 열악한 도로사정
때문이었다.

"베트남정부도 "도이모이"(개혁과 개방)정책의 추진과 경제개발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경제의 동맥인 도로 정비가 요체라고 판단, 1,700여km
에 달하는 1번국도의 정비에 나서게 된 것"이라는 백남창차장의 설명이다.

구간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겠지만 욕사이와 빈을 잇는 이번 공사의 가장
큰 문제는 동남아지방 대부분이 그렇듯이 연약지반이 많아 길을 다지는 일이
어렵다는 점.

따라서 양질의 흙을 구하는 것이 관건으로 석산을 발파, 여기서 나온 것을
다시 파쇄기에다 갈아 기반을 다지는데 쓸 계획이다.

지난 연말 공사가 시작된 후 9월말현재 공정은 30%수준으로 공사구간에
대한 기본설계 및 실시설계가 완료됐고 현재 하이퐁에서 하역을 기다리고
있는 장비들이 현장에 도착하게 되면 공사는 본궤도에 돌입하게 된다.

극동건설 공사현장에서의 일과시간은 아침 6시에 시작, 저녁 8시에 끝나는
초강행군이다.

점심시간이 끝나고 나면 잠시 낮잠을 자는 시간이 주어진다고 하지만
중노동이 아닐 수 없다.

공사에 있어 가장 큰 문제는 뭐니뭐니해도 현지기후다.

7,8월 한여름더위가 지났다고 하는 9월에도 낮기온은 40도를 넘나들었다.

불쾌지수가 200을 넘는 경우를 한국에서는 좀처럼 상상하기 힘들 것이다.

더운 날씨는 견딜 수 있다해도 진짜 어려운 것은 물문제였다.

수도시설은 물론 연결되어있지만 베트남의 물사정이 좋지 않아 새벽에나
찔끔찔끔 물이 나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샤워 한번 시원하게 하는 것이 큰 소망이 됐다.

메인 베이스 캠프에는 현재 극동건설 직원 20여명과 현지 채용근로자
60여명이 호흡을 맞추고 있고 건설감리회사인 미국 루이스 버거사의
프로젝트 매니저 4명도 같이 땀을 흘리고 있다.

매니저중에서도 선임인 윌리엄 커티스씨는 "동남아건설현장에서만 20년
가까이 일을 하고 있으나 이번 극동건설사람들같이 기술도 기술이지만
근성이 있는 경우를 본 일이 없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경제발전도 따지고보면 경부고속도로가 그 시발점이나
마찬가지였듯이 베트남의 1번국도공사가 마무리되고 경제여건이 좋아지면
우리의 좋은 파트너가 될 것"이라고 현지에서 근무하다가 본사로 자리를
옮긴 고영민전임소장은 예상했다.

"도이모이"로 그간의 긴 잠에서 깨어나는 노력을 펼치고 있는 베트남.

극동건설은 우리의 베트남건설시장진출에 있어 사실상의 첨병이다.

극동이 닦은 그 길을 따라 우리의 상품들이 베트남 곳곳을 향해 달리게
될 것이다.

< 글 양승현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9월 3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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