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추 볼이 처음 붉고 밤송이가 벙그니/
흰 햅쌀밥에 토란국일러라./
집집마다 묘에 올라가기를 한식때와 같이하니/
닭 밝은 중추에 감개한 정이더라"

조선조 철종때의 선비 간송 유만공은 "세시풍요"에다 조선후기 추석의
정경을 이렇게 그려 놓았다.

농가에서는 일찍 베어 낸 올벼로 "올벼송편"을 빚었다.

송편속은 뒤틀린 콩팥 밤 대추를 썼다.

무우와 호박을 넣은 시루떡도 쪘고 파란 햇통가루를 무친 인절미도
만들었다.

햇녹두로 청포묵을 쑤고 햅쌀로 신도주를 빚었다.

초가지붕위에 옹기종기 열린 박을 따서 새하얀 박속으로 무쳐 먹는
박나물은 추석의 별미였다.

"아무리 벽촌의 가난한 집안에서라도 예에 따라 모두 쌀로 술을
빚고 닭을 잡아 찬도 만들며 또 온갖 과일을 풍성하게 차려 놓는다.

그래서 말하기를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늘 한가위 같기만 바란다"

"열양세시기"에 이런 기록을 보아도 일년중 가장 풍족하게 술과 음식을
즐길수 있고 여름처럼 무덥지도 않고 겨울처럼 매서운 추위도 없는 추석은
행복하기만한 명절이었다.

"농가월령가"에도 "면화따는 다리끼에 수수이삭 콩가지요, 나뭇군
돌아올제 머루 다래 산과로다.

뒤동산 밤 대투는 아이들 세상이라"고 한것을 보면 "더도 덜도 말고
늘 한가위만 같아라"는 덕담이 나올만 하다.

추석은 그대로 조상과 하늘의 축복이었다.

그래서 농민들은 풍성한 수확을 거두게 해준 조상과 하늘에 감사하는
제를 지냈다.

호남에서는 "올계심리", 영남에서는 "풋바심"이라고 부르는 추수감사제다.

벼가 다 여물어 갈 무렵 잘 여문 것을 베어다가 밥을 짓고 술 조기
햇병아리 햇무우 등을 젯상위에 차려놓고 향을 사르며 제를 지낸다.

이때 젯상 밑에는 햇짚을 까는 것도 특징이다.

한편 추석에는 마을마다 소먹이놀이 지신밟기 강강술래 씨름 소싸움
닭싸움 가마싸움 활쏘기등으로 시끌법적하게 하루를 즐겼다.

세상이 옛날과는 달라지고 풍속도 많이 변했다.

하지만 추석은 끈질기게 생명력을 이어가고 있는 우리의 고유명절이다.

정년 먹지 않아도 배부를 것 같은 축복의 계절에 맞는 명절이지만
올해는 우리주위에 추석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많아 안타깝다.

지난 여름 대홍수로 아직 집에 돌아가지 못하고 수용소에 남아 있는
수재민들과 생각지도 못했던 공비출현으로 삶으 터전에서 소개된
군작전지역 주민들이다.

올해는 농사가 대풍이라고 한다.

풍년의 즐거움을 이들과도 함께 나눌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고사떡이나 헛제사밥을 이웃과 나누어 먹던 것이 우리의 정깊은
옛풍속이 아니었던가.


(한국경제신문 1996년 9월 2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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