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매자 <창무예술원 예술총감독>

흔히들 문화의 변천과정을 시대적으로 구분해 적절한 용어를 붙이는
것 같다.

가령 잃어버린 시대니 반란의 시대니 하는 것들 말이다.

국민소득 1만달러시대라더니 2020년엔 국민소득 3만달러의 세계7위
나라가 될것이라는 얘기도 들린다.

또 세계일류국가로의 진입을 외치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1만달러시대 수치의 풍요에 대해 동의하고 싶지않다.

1만달러시대의 향유가 초등학교 아이들의 영어과외수업비가 대학등록금
보다 비싸다든가, 한 소년이 컴퓨터를 못사 자살을 했다는 등의 일탈로
나타나는 세태때문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아니다.

고급승용차 아파트 골프 외제품 해외여행., 마치 이런 것들로부터
무슨 한풀이를 하거나 "웬수"라도 갚으려는 듯한 일부 빗나간 사람들의
의식구조를 꾸짖어 보려는 것은 더욱 아니다.

상궤에서 벗어나 역행의 논리를 펴는 동안 우리의 아름다운 것들이
속절없이 사라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말하고 싶을 뿐이다.

예를 들어 해외여행만 해도 그렇다.

언제부터인가 먹고 살판 난 나라처럼 여행열풍이 불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해외여행에 쓴 돈이 한달에 몇억달러인가를 넘어
최고수치를 기록했다한다.

그런데 이 유행병은 과거 일본이나 대만에서 1만달러시대에 나타났던
해외여행 붐과 동일한 현상이라 한다.

그러니까 먹고 살기 좋아지는 나라의 과도기적인 현상이라고 식자층은
풀이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처해 있던 당시의 사회적 경제적 환경이 현재의 우리나라
입장과 같은 것은 아니었다고 본다.

열강국들의 이해관계가 얽힌 역학적인 구도도 지금과는 사뭇 달랐다고
생각된다.

여기에 더해 달콤한 외세문물섭렵의 욕구도 그들과 우리는 달랐다고
믿어진다.

그들도 우리처럼 곰발바닥을 베고,에이즈를 옮겨오고,싹쓸이 외제품을
싣고 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우리가 그냥 무저항적으로 외제문화 맛보기에 열을 올리고 있는
동안 우리가 가꾸고 지켜야 할 우리만의 아름다움, 우리만의 문화는
상대적으로 망각되어갔던 것이다.

해외여행은커녕 국내여행도 어렵던 시절의 얘기다.

마을 아낙네들은 1년내 계를 모아 목돈을 만들어 경주다 부여다 명승지를
찾아 모처럼의 여행을 떠났다.

일상으로부터 해방된 여인들은 장구치고 춤추며 1년간을 벼르던 자유를
만끽했다.

그들은 시어머니로부터, 남정네로부터, 그 모든 속박으로부터 탈출했다는
자유로움과 자연의 정취에 취해 덩실덩실 어깨춤도 추지않았던가.

명주수건대신 땀내음 나는 세수수건을 손끝에 너울거리던 그런
여인들의 모습은 낙화암에서도, 불국사에서도 흔히 볼 수 있었던
정경들이었다.

이는 불과 10년전,20년전의 얘기다.

랩인가 디스코인가 하는 춤이 난무하는 요즈음 그 시절 우리만의
몸짓으로, 우리만의 감흥으로 가식없는 춤을 추던 그 여인네들의
모습이 더욱 아련해진다.

1만달러 시대를 예찬하고 있는 동안 우리는 무엇을 잃어가고 있는지
심각하게 생각을 해봐야 될 것 같다.

1만달러의 혼란 속에, 1만달러의 무의식 속에 흘러가고 있는 이
시대를 두고 무슨 시대라고 불러야 할지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9월 2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