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운렬 < 한국증권경제연 원장 >

최근 우리 경제에 대하여 걱정하는 소리가 많다.

겸손한 마음으로 우리의 문제점을 정확히 진단하고 국민 합의에 의하여
해결책을 찾아 시행할 수만 있다면 가장 현명한 위기 대처방안이 될 것이다.

그러나 부정적인 문제점만 크게 부각되어 국민들이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잃어버린다면 경제는 회생불능의 미궁으로 빠질 위험에
직면하게 될지도 모른다.

우리는 상황변화에 지나치게 과민반응을 하여 경제가 조금 좋아지니까
금세 선진국에라도 진입한 것으로 착각하여 흥청망청 분위기에 빠져들어
외국언론으로부터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렸다는 비아냥을 듣고 있다.

정부는 정부대로 해외부동산투자를 자유화하고 출국자들이 보유할 수 있는
외화한도를 확대해 주었다.

기업은 기업대로 80년대말 호황을 누릴 때 장기적인 경쟁력 강화를 위한
기술개발 투자를 하는 대신 쉽게 돈버는 부동산투기 등 재테크에
열중하였다.

오늘날 우리 경제가 안고 있는 구조적인 문제는 그때부터 배태되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국민은 국민대로 선진국에 진입한 것으로 착각하여 해외여행이다, 외제품
선호다 하여 소비에 지나치게 치중하고 있다.

95년말로 우리의 1인당 GNP가 10,000달러이므로 우리는 세계 평균보다
4~5배 잘사는 것으로 착각하고 그에 걸맞는 소비행태를 보이고 있으나
몇달전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세계 1인당 GNP 평균은 8,000달러에
이르러 우리는 이제 세계 평균수준을 갓 넘어섰을 뿐이다.

우리의 경제적 위상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확산되지 않는 한 과소비 풍조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며 근로자들이 요구하는 두자리 수 이상의 임금상승
요구도 억제될 수 없을 것이다.

지금 현재 처하고 있는 우리 경제상황은 각 경제주체들의 과거 행적에 대한
자업자득인데도 모두가 다른 경제주체들에 책임을 전가하려고만 한다.

이러한 접근방법으로는 결코 이 상황을 쉽게 극복할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각 경제주체들이 각자의 문제점이 어디에 있는지를 정확히 읽고
대응한다면 충분히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난 30년동안 언제 한번 문제없이 편안하게 살아보았는가.

항상 어려운 가운데서 위기상황을 극복하고 살아왔지 않았는가.

자만에 빠지지 않는 여유와 자신감은 우리 경제를 선순환 시킬 수 있지만
대책없는 초조감은 경제를 더 악화시키는 악순환만을 낳을 것이다.

정부는 더 이상 임기응변식 정책대응을 삼가야 한다.

각료 한두사람 바꾸어서 경제난국을 극복하겠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오히려 정책일관성에 대한 혼란만 주어 불확실성을 키울 뿐이다.

우리 경제규모는 이미 그 단계를 넘어섰으며 민간의 창의와 자율이 최대한
발휘될 수 있도록 각종 규제를 과감히 철폐하는데 앞장서야 한다.

우리 경제가 처한 실상을 여과없이 국민에게 알리고 국민의 동의를 구해야
한다.

부처간 정책조율을 사전에 치밀하게 하여 각부처에서 서로 다른 발표를
하는데서 오는 민간부문의 불확실성을 최소화시켜야 한다.

기업들은 궁극적인 경쟁의 원천이 어디에 있는지를 잘 파악하여야 할
것이다.

과거와 같이 부동산 등에 투기하여 쉽게 돈을 벌겠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아직도 그러한 향수에 젖어 외형위주의 성장정책만을 추구하는 한 우리
기업의 국제경쟁력은 회복되기 어렵다.

우리 자신의 고유한 기술없이는 국제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기업 구성원의 자발적인 협조없이는 계속적인 성장이 어렵기 때문에 회사의
실상을 투명하게 공개하여 협조분위기를 조성하여야 한다.

기업 구성원들도 눈앞의 이익에만 얽매이지 말고 장기적으로 파이를 키우는
방향에서 문제에 접근하여야 한다.

기업이 있고 구성원이 있다.

오늘날 우리 기업이 처한 어려움을 고려하지 않은 채 매년 두자리 숫자
이상의 임금상승을 요구하는 것은 기업도 죽고 자기도 죽는 결과를
가져온다.

지난 70년대 미국경제가 매우 어려움을 겪을 때 모 항공사 한 간부는
자기의 임금상승분과 상여금을 회사에 자진 반납하자 많은 임직원들이
동조하여 그 항공사는 불황을 잘 극복할 수 있었다는 것은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준다.

우리 국민들은 우리의 위상을 정확히 읽고 분수에 맞는 소비를 하여야
한다.

아직 우리는 세계 평균정도의 소득수준에 머물고 있다.

저축하고 허리띠 졸라 매고 열심히 노력하여야 한다.

지난 30여년 무에서 유를 창조했던 그 기백으로 이 난국극복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여야 할 것이다.

우리 국민이 갖고 있는 근면성과 높은 교육수준은 분명히 현재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경제를 재도약시킬 수 있을 만큼 충분하다.

어떠한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결코 자신감을 상실하여서는 안된다.

우리 경제문제를 푸는데 가장 큰 걸림돌 중의 하나는 정치수준이다.

오늘 우리 경제가 겪고있는 많은 어려움은 정치인들이 미래에 대한 비전
제시는 하지않고 정파간 이해다툼에만 열중하는 와중에서 잉태되었는지도
모른다.

현 우리의 노동관계법이나 지나친 복지관계 조항에는 분명 우리 경제
수준으로는 소화하기 어려운 점이 많다.

무책임한 정치인들의 흥정의 소산이다.

경제가 멍이 들어가도 표를 의식하여 얘기 한마디 못하는 정치인, 대안을
제시하지 않은 채 문제점만 부각시켜 국민을 불안하게 하는 정치인은 이제
정치판에서 떠나야 한다.

정치의 선진화 내지 성숙함이 우리 경제를 회생시키는 가장 시급한
과제이다.

비전을 제시해주지 못하는 정치인을 과감히 도태시키는 국민의 성숙함이
절실한 때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9월 1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