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단지와 단지사이를 가르며 구불구불 50km를 이어지는 숲울타리.

고층아파트(4층-12층)와 울창한 숲의 조화.

아파트단지 뒤편의 정갈한 호수.

주민들의 동선을 최대한 줄일 수 있게한 대형상가시설 등...

독일 서베를린 북동동쪽으로 난 테겔러 슈타링(순환고속도로)를 자동차로
30여분 달리면 테겔공항을 지나 옛동독 경계 부근에 거대한 아파트단지가
나온다.

이곳이 베를린 위성도시이자 대규모 주택단지인 매르키쉐 비어텔
(Markische Viertel)이다.

매르키쉐 비어텔은 여의도(89만평)보다 조금 넓은 385ha(115만5,000평)
대지에 1만6,000여가구의 아파트와 단독주택이 들어서있는 비교적 적은
규모의 신도시이다.

그러나 이 도시는 밀집형 아파트단지에 대한 독일국민의 본질적인
혐오감을 친근감으로 바꿔놓은 대표적 신도시이기도 하다.

이 도시는 지난 64년 조성에 들어가 10년만에 입주가 완료돼 모두 5만
여명의 주민이 20개블록으로 나눠 들어서있는 아파트에 살고 있다.

밖에서 보는 이 도시의 모습은 흡사 경부고속도로옆 분당신도시의
아파트군과 같은 형태이다.

그러나 단지안으로 한 걸음만 들어서면 고층아파트의 콘크리트 구조물은
거의 보이지 않는 녹지공간이 펼쳐진다.

주민 한명이 누릴 수 있는 활동공간 23평에 공원, 정원 등 녹지공간이
17만여평으로 한 가구당 10평 규모의 녹지에 불과하지만 절묘한 단지설계가
공원효과를 극대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매르키쉐 비어텔은 2차 세계대전과 동서독의 분단으로 베를린내 인구가
급증하면서 땅값이 비싸지고 더이상 도시안에 건물을 지을 땅이 없어지는
등 주변여건이 악화되자 그 해결책으로 구상됐다.

지난 63년 신도시 건설계획 당시 베를린 건설장관이었던 롤프 슈베들롤에
입안된뒤 독일국내외 20명의 건축가들이 도시건설에 참여해 64년부터
10년동안 공사가 이뤄졌다.

따라서 이 도시는 기본적으로 베를린의 인구분산을 위한 "베드타운"으로
만들어진 셈이다.

자족도시가 아닌 베드타운으로 구상된 것은 베를린과의 교통편리성이
확보돼 있었기 때문.

주민들은 베를린 순환고속도로인 슈타르링과 아부스를 이용하면 30-40분에
직장이 있는 베를린에 닿을 수 있다.

또 단지 서쪽으로는 베를린과 연결되는 지하철이 운행되고 있다.

베드타운으로 성격이 강한 도시지만 독일은 이 도시를 사람이 "살만한
곳"으로 만들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

우리네와 달리 독일사람들은 고층아파트군에 대해 본질적인 기피증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독일은 이 도시의 건설이념을 "녹지속의 도시"와 "저소득이 값싼
임대료로 중산층이상의 삶을 누릴 수 있는 곳"으로 잡았다.

우선 독일내외에서 명성을 얻고 있는 20명의 건축가들이 20개의 블록으로
나눠진 소규모단지를 개별적으로 맡아 설계하도록 했다.

단지 조성후 설계에 대한 책임을 영구히 지는 "단지실명제"를 도입한
셈이다.

또 각 블록별로 아파트동을 국내 아파트같은 남향의 획일적인 배치대신
자로 건립해 독립된 공간확보에 무게를 두었다.

이렇게해서 마련된 동사이의 공간에는 독특한 조경술로 가꿔진 정원을
두었다.

정원은 삼각형, 마름모꼴, 원형 등 기하학적인 나무울타리로 5개-6개의
작은 공간으로 다시 나눠 지루한 기분을 없앴다.

작은 정원이 딸린 단독주택을 선호, 아파트를 외면하는 일반적인
독일인들의 주거기호를 배려한 설계인 것이다.

또 블록과 블록사이, 단지외곽 등의 경계에는 숲울타리나 호수, 작은
개천을 배치, 단지 전체와 조화되도록 했다.

특히 시공.관리회사인 게소바우(GeSoBau : 공공임대주택건설 및 관리를
위한 조합)가 지난 84년 설립한 사설연구소 마르크포슝은 이 도시를 독일의
대표적인 주거단지로 탈바꿈시킨 일등공신이다.

이 연구소는 주민설문조사를 통한 적극적인 보수관리시스템을 도입,
도시조성 초기의 딱딱한 콘크리도로와 우뚝솟은 고층아파트, 상가건물들로
전체가 거대한 콘크리트 덩어리처럼 보이던 이곳의 시멘트 냄새를 지우고
호수와 숲이 어우러진 단지를 만들어냈다.

이 단지에서 주류를 이루고있는 10Q(1Q=30평 정도)짜리 아파트의 월
임대료는 120마르크(약 6만6,000원선)로 독일 어느 지역보다 싼 편이다.

베드타운으로 자족기능이 거의 없는 도시임에도 주민생활에 불편함이
전혀 없도록 완벽한 레저, 의료, 교육, 상가시설을 갖춘 것도 이 도시를
"아늑한 보금자리"로 만들고 있다.

단지안에는 어느 곳에서나 가장 빨리 접근할 수 있는 단지 중앙위치에
백화점 두개를 배치해놓고 단지 곳곳에도 상가를 설치했다.

단지 중앙의 백화점은 지붕을 유리돔으로 처리하고 실내에 공원을 두어
휴식공간을 겸할 수 있도록 했다.

또 단지 중앙을 비롯 곳곳에 초등학교, 고등학교, 특수학교, 음악학교 등
모두 10개의 교육시설이 배치돼있다.

특히 단지 12군데의 유치원은 탁아소를 오후 9시까지 운영하고 있어
맞벌이 부부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

이외에 단지내에는 모두 3개의 대형 실외운동장과 승마장, 스퀴시장,
수영장 등이 갖춰져 있어 주민들의 레저생활에 전혀 불편함이 없다.

또 의료시설로는 35개의 개인병원이 운영되고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이곳은 전체 주민들이 단지를 가꾸는데 자발적인 참여를 이끌어내기
위해 각종 프로그램을 마련해 주민들의 "만남의 장"을 열어두고 있다.

매년 여름이면 단지내에 있는 대규모 실외운동장에서 맥주마시기대회,
그림그리기 등 운동회를 개최해 주민단합을 꾀하고 있다.

또 "낙서없애기", "환경에 관한 토론회" 등 각종 토론회를 수시로 열어
내가 살고 있는 공간을 가꾸기위한 행사를 가지고 그 결과를 34명의 주민
대표를 통해 홍보하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 예술혼이 살아있고 자연과 인간이 조화된 신도시로 거듭난
마르퀴셀 비어텔도 새로운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게소바우의 예산부족이 가장 큰 어려움이다.

주민들의 월세와 정부나 베를린지원으로 운영되는 게소바우.

이곳의 홍보담당자인 인그리드 볼프마르기스는 "관리.운영예산비의
절대적인 부분을 차지하던 정부와 베를린의 지원예산이 삭감된뒤 입주자들의
임대료로는 단지 관리하기에 턱없이 부족하다."며 "단지내 15%에 달하는
아파트를 재원마련을 위해 팔 계획이나 보수비도 부족해 계획이 늦어지고
있다."고 밝혔다.

주차공간부족도 문제다.

단지 설계당시 2가구당 1대꼴로 주차할 수 있을 정도의 주차공간이 확보돼
있다.

지금은 늘어난 자동차로 인해 2명당 1대꼴의 주차공간이 필요한 지경이나
게소바우는 뚜렷한 대책을 세우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예산확보와 주차공간 확보 앞으로 풀어나가야할 마르키쉘 비어텔의
과제다.

< 김동민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9월 1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