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습시녀는 자기가 울고 있는 모습이 들켜서 쑥스러운지 슬금슬금
대옥을 피해 저쪽으로 가버렸다.

대옥은 여전히 그 자리에 붙박힌 듯 우뚝 서 있기만 했다.

자견이 대옥의 손수선을 찾아 가지고 오니 대옥이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자견이 숲속으로 조금 들어가니 대옥이 해당화 앞에 한그루 꽃나무처럼
서있는 것이 아닌가.

꽃도 져버린 해당화가 뭐 볼 게 있다고 저리 넋을 잃고 있는 것일까.

자견이 다가가 대옥을 부르니 대옥은 자견의 목소리를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방향을 틀어 소상관 쪽으로 향했다.

"아가씨, 여기 손수건 가지고 왔어요.

근데 어디로 가시는 거예요? 대부인 마님 댁으로 가려면 저쪽으로
가야 하는데"

그러나 대옥이 멈춰 서며 자견을 돌아보고 물었다.

"넌 왜 왔니? 소상관에 있지 않고"

대옥의 말을 듣는 순간, 자견은 뭔가 이상하다 싶어 대옥을 유심히
쳐다보았다.

아닌게 아니라 두 눈은 초점을 잃은 채 멍하게 정신 나간 표정을 하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 기쁨에 들뜬 모습과는 천양지판이었다.

너무 기뻐서 제정신이 아닌 것인가.

자견은 귀신에 홀린 듯 어리벙벙하기만 했다.

"아가씨가 손수건을 가지고 오라고 해서 이렇게 가지고 왔잖아요.

아가씨, 지금 대부인 마님께로 안가시는 거예요?"

대옥이 손수건을 받아 들더니 다시 방향을 잡아 걸어나갔다.

대부인 댁으로 가려면 일단 대관원 정문을 나서야 하니 대옥이 가는
방향이 맞는 셈이어서 자견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대옥은 대부인 댁으로 오자 자견이 문발을 들어주기도 전에 손수
문발을 들치고는 힘있는 걸음걸이로 안으로 쑥 들어갔다.

마침 대부인은 안방에서 낮잠을 자고 있었고 시녀들은 더러는 밖으로
놀러나가고 더러는 바느질 같은 것을 하면서 졸고 있었다.

습인이 잠시 졸고 있다가 대옥을 보자 반색을 하였다.

"어서 오세요.

근데 대부인 마님이 주무시고 계시니 어떡한다?"

"난 보옥 도련님을 만나러 왔어. 지금 있지?"

습인이 채 대답을 하기도 전에 대옥이 보옥의 방으로 불쑥 들어섰다.

보옥은 어디로 나갔는지 방안에 없었다.

"보옥아, 보옥아, 어디 있니? 숨어 있지 말고 냉큼 나오너라"

대옥이 두 팔을 펼치고 보옥을 찾는 시늉을 하며 방을 돌아다녔다.

습인이 눈이 휘둥그래졌다.

"아가씨, 왜 이러세요. 정신 차리세요"

자견이 울먹이며 대옥을 붙들어 방을 나왔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9월 1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