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과가 설반을 만나러 떠난지 나흘 만에 돌아와 설부인에게 아뢰었다.

"설반 형의 재판은 상급 관청에서도 과실치사로 판결이 나서 석방
탄원서가 받아들여지는 대로 감옥에서 나올 수가 있답니다.

그때 제법 많은 속전을 내어야 하는데 미리 마련을 해두시라고
그럽디다.

그리고 보채의 혼인 문제에 대해서도 어머니께서 결정을 잘 하셨다고
기뻐하였습니다.

설반 형 자기의 석방을 기다릴 필요없이 보옥 도련님 집안에서 하자는
대로 하루라도 빨리 혼인을 치르도록 하라고 그랬습니다.

그래야 혼인 비용도 적게 들 거라고요"

설반이 석방될 날이 가까웠고 보채의 혼인에대해서도 마뜩한 심사를
피력했다니 설부인으로서는 여간 반가운 소식이 아니었다.

"그럼 이제 금분을 바른 경첩에다가 보채의 사주팔자를 써서 가련에게로
보내도록 하여라.

그러면 그쪽에서 우리에게로 와서 혼례일을 알려줄 거야"

이렇게 보옥과 보채의 혼인이 구체적으로 진행되고 있을 무렵, 대옥은
시녀 자견이 들려주는 소문으로 가습이
벅차올랐다.

"아가씨, 아가씨, 보옥 도련님 집안에서 도련님의 배필로 아가씨를
정하셨대요.

금과 옥의 인연 어쩌고들 해서 보옥 도련님과 보채 아가씨가 혼인을
하게 되나 보다 했는데 도련님이 옥을 잃어버렸으니 금과 옥의 인연도
끝장이 난 모양이지요"

자견도 기쁜지 싱글벙글 입을 다물지 못했다.

"너, 어디서 그런 소문을 들었니? 내가 직접 확인을 해보아야겠다"

대옥이 급히 옷을 챙겨 입고 자견과 함께 대부인의 거처로 나아갔다.

그러다가 손수건을 두고온 것을 알고 자견더러 다시 소상관으로 가서
손수건을 가지고 오게 하고는 대옥이 혼자 숲길을 산책하듯이 천천히
걸어갔다.

그런데 숲 속에서 여자 울음소리가 들려와 대옥이 몸을 웅크리고
살금살금 다가가보았다.

꽃이 진 해당화 그늘에서 견습시녀로 보이는 한 여자애가 울고 있었다.

"넌 어디서 일하는 아이인데 여기서 울고 있니?"

"전 대부인 마님 댁 견습시녀인데요, 언니들이 나를 때려서 그래요.

내가 보옥 도련님 시녀들한테서 들은 소문을 들려주니 막 내 입을
쥐어박으며 쓸데없는 소리 말라고 꾸지람을 하는 거예요"

"무슨 소문인데?"

"보옥 도련님이 대옥 아가씨랑 혼인을 하게 되었다는 것은 거짓
소문이고, 사실은 보채 아가씨랑 혼인을 할 거라는 이야기였죠.

알 사람은 다 알아요"

대옥이 갑자기 정신이 멍해지고 온몸이 굳어졌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9월 1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