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상반기의 우리나라 경제지표가 당초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밑돌게 나타나고 있다.

경제성장률이 뚝 떨어진데 이어서 물가와 외채 등이 오르면서 국제
수지적자폭이 더욱더 확대되고 있어 우리경제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는
느낌이다.

이러한 우리경제상황에 대해 일부에서는 불황에 접한 위기 상태라고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다른 한편에서는 단순한 경제순환기의 하강
국면에 있을 뿐이며 곧 회복될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논쟁보다는 오히려 우리경제의 보다 구조적이고
본질적인 요인을 분석해보고 방향을 설립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여진다.

얼마간의 엔화하락과 해외구매력의 저하로 수출의 증가세가 뚝
떨어지고 반도체 철강 자동차 등 몇개 품목들의 수출이 안돼서 국민경제
전체가 흔들리는 취약한 경제구조가 문제이다.

마치 우리 경제 전부가 반도체를 위시한 몇개의 산업에 의해 이루어진
것 같이 보인다.

이들 산업이 우리 수출에서 큰 몫을 차지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더 큰 기본은 우리나라 산업구조에서 찾아볼 수 있다.

확실히 최근 몇년동안 우리나라 산업과 경제에 분명히 심상치 않은
현상이 엿보인다.

3차산업인 금융 및 기타 서비스 산업이 전산업에서 차지하고 있는
비중이 점차적으로 현격히 증가하고 있으며 반면 제조업의 증가율은
점점 낮아지고 있다.

현재 3차산업의 비율은 60%를 훨씬 넘고 있다.

다시말해 많은 제조업들이 국내에서는 기업을 운영할 수 없는 여건으로
아예 공장을 폐쇄했거나 해외로 탈출함으로서 산업 공동화현상을
가져오게 하고 있다.

이는 우리경제의 고질적인 고비용 저효율의 구조적인 문제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항상 경제상황이 어려워지면 이러한 문제가 수없이 제기돼 왔으나
그동안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

국내 제조업이 기업을 운영하기에는 임금 금리 물류비용 지가 등이
다른 경쟁국에 비해 엄청나게 높을 뿐만 아니라 정부의 기업정책에
대한 불안감마저 떨쳐 버리지 못하고 있다.

물류비용이 제품가격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상대적으로 너무높다.

사회간접시설 확충에 대한 투자가 가능함으로써 오늘날 생산활동
뿐만 아니라 국민의 일상 생활에 막대한 불편과 비용을 초래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인건비 역시 경쟁국에 비해 높다.

물론 성과에 대한 공정한 분배는 바람직하지만 과거 수년간의 임금
상승률은 생산성 증가에 비해 훨씬 높게 책정되고 있다.

근로자의 작업수행 집중도도 많이 떨어진다.

선진국의 작업현장이나 사무실을 방문해보면 작업자의 작업수행
전념도는 우리나라의 그것에 비하여 엄청나게 높다.

우리는 작업수행시 집중도의 강도가 떨어지고 주의가 산만해 생산성이
낮아지고 제품 불량률은 높아질 수 밖에 없다.

이러한 요인은 우리 상품의 경쟁력에 직접적 영향을 줄뿐만 아니라
한국 상품의 이미지에 손상을 줄 것이다.

정부의 경제정책은 종합성과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근래 발표되고 있는 신대기업 정책, 중소기업정책 노사정책 조세개혁안
등은 오히려 기업인들에게 불안감과 혼란을 조장시키고 있다.

각종 행정규제를 완화하겠다는 발표가 나온 이후에도 별로 크게 나타난
결과가 없다.

정부에 대한 기업인들의 실망과 의구심을 자아내게해 불신만 더욱
가중 시키고 있는 것 같다.

우리는 전통적으로 정부와 산업간의 관계가 밀착돼 있다.

정책당국자의 조그마한 조치가 바로 산업내의 기업활동에 큰 영향을
준다.

미국이 힘을 가장 크게 발휘했고 세계가 미국을 부러워 했던 황금의
60년대에는 3차 산업의 구성비가 60%를 조금 넘는 수준이었다.

당시 미국경제는 누가 보아도 훌륭하고 건실했다.

보유하고 있었던 기술 노동 관리 및 생산능력은 최고에 달했고
영광스러웠다.

미국산제품(Made in USA)하면 그것이 바로 제품 신화의 상징이었다.

자동차 가전제품, 더 나아가 달에 우주선을 착륙시켰고 아폴로 계획은
세계인들을 매혹시켰다.

자연히 당시 미국의 무역수지는 흑자였다.

그러나 80년대에 진입하면서 제조업의 쇠퇴와 서비스산업의 비중이
70%를 넘으면서 무역적자폭이 급격히 증가했다.

그도 그럴 것이 물건을 만들지 않으니 팔 것이 없어지고 오히려
외국에서 살 것이 많아진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우리경제의 현황에 큰 시사점을 주고 있다.

특히 우리는 자원부재국으로서 경쟁력있는 물건을 만들어 해외에
팔아야 하는 수출주도형 경제이다.

탈공업화 하면서 소프트화하는 경제, 정보산업 등이 확대되어가는
이른바 제조업 쇠망논을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서비스업이라는 것은 제조업이 있기 때문에 생성되는 것이다.

엔지니어링 플랜트산업 컴퓨터서비스 등 소위 첨단서비스산업도 서로
연장되는 제조업이 있어야 발전한다.

그러한 의미에서 다이나믹한 제조업을 계속 육성시켜주면서 서비스
산업과의 건전하고 균형있는 발전이 요구된다.

정부는 현황의 어려운 경제여건을 보다 솔직하게 인식하고 단기적인
대중요법의 처방 보다는 장기적인 시각에서 제조업들이 왕성하게 활동할
수 있는 제도와 풍토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9월 1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