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계가 본격적인 "고용 리스트럭처링"에 나섰다.

30대 그룹 기조실장들이 모여 내년도 임금총액 동결을 추진하기로 합의하자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가 동참을 선언했는가 하면 각 기업들도 임금총액
동결을 위한 제도정비에 앞다퉈 뛰어들고 있다.

임금총액을 동결한다는 것은 기업이 지출하는 인건비 총액을 올해와 똑같은
수준으로 묶겠다는 의미.

"밥그릇" 크기는 절대 키우지 않겠다는 것이다.

따라서 임금인상율을 제로%로 하거나 임금이 오르면 오르는만큼 인원을
줄이는 방법외에는 다른 방도가 없다.

기업들의 고용 리스트럭처링이 가속 페달을 밟고 있는 셈이다.

기업들이 이번 임금총액 동결 선언으로 고용 재조정 작업에 나선 것은
아니다.

"고임금-저효율"이라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 이미 각 기업들은
명예퇴직제 연봉제 신규채용억제 등 다양한 리스트럭처링에 나서 왔다.

해태유통은 이미 고졸여사원들에게까지 연봉제를 적용했다.

선경인더스트리 한국유리 등은 직원의 3분의1가량을 명예퇴직시켰다.

정규직 대신 계약직, 현장으로의 재배치, 자연감소인원 충원중단, 신규채용
억제 등 불황의 골이 깊어질수록 고용 리스트럭처링의 방법은 더욱
다양해지고 있다.


[[[ 연봉제 ]]]

해태유통은 오는 10일 연봉제에 의한 첫 봉급을 지급한다.

해태유통의 연봉제가 재계의 관심을 모으고 있는 것은 고졸여사원에게까지
이 제도를 적용했다는 점.

재계 첫 케이스다.

해태가 계산원인 이들에게 연봉제를 도입한 이유는 간단하다.

"회사의 얼굴들의 효율이 높아야 회사 전체의 효율이 올라간다"(해태유통
K상무)는 것.

해태의 연봉제가 전체적으로 "플러스 섬(Plus Sum)"을 지향한다지만 "필요
없는 사람 골라내기"를 노리고 있다는 것만은 부인할 수 없다.

더욱이 총액임금을 동결하는 마당에 일부 우수직원에 대한 파격적인 임금
인상은 상당수 직원의 도태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효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균등한(Equal) 처우"에서 "공평한(Fair) 처우"로
바꿔야 한다"(해태유통 박성배사장)는게 연봉제의 핵심이다.

94년 두산그룹이 과장급 이상을 대상으로 이 제도를 도입한 이후 벌써
1백여개사가 동참한 상태다.

한국경제연구원이 최근 종업원 1백명 이상의 기업 2백40개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80%를 넘는 기업들이 이 제도를 활용하고 있거나 곧 도입
하겠다고 답했다.

최근들어서는 현대자동차 삼성전자등 각 업종 주도기업들이 나서고 있어
이 제도의 확산은 가속화될 전망이다.

더욱이 각 기업들이 "연봉제 도입과 함께 철저한 본부별 평가제를 병행할
계획"(현대자동차 인사총무본부장 김판곤전무)이어서 생산직보다 화이트칼라
(관리직)들의 수난은 불가피해 보인다.


[[[ 명예퇴직제 ]]]

한국유리는 요즘 분위기가 뒤숭숭하다.

얼마전 전체직원의 20%선인 4백95명을 "결코 명예스럽지 않은 명예퇴직"을
시킨데 이어 추가접수를 받겠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전기초자등 계열사 직원들도 명예퇴직제의 전염병에 걸릴까 우려하고
있다.

한국유리뿐만이 아니다.

선경인더스트리가 부과장급 간부 4명중 1명 꼴인 1백4명을 내보낸데 이어
3천9백여명의 사원 및 생산직에도 이 제도를 확대 적용키로 했다.

포스틸은 이 방법으로 2백명이 넘는 직원을 감원했다.

경총은 대한항공 LG정유 대우중공업 삼미특수강 삼양사 등 44개 기업이
이미 명예퇴직제를 실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연말까지는 이 제도를 도입하는 대기업이 적어도 1백여사에 달할 것이란
전망이다.

국내 최대 기업인 삼성전자도 "제2의 인생을 설계하고 있는 사람을 대상
으로 명예퇴직제를 실시하겠다"(삼성전자 김광호부회장)고 밝혔다.

"효율제고를 위해 사업구조 재조정은 불가피하다. 명예퇴직제는 이를
효과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한 방법이다"(선경인더스트리 인력관리담당
서태구이사).

연봉제가 "영양제"라면 명예퇴직제는 효과가 금방 나오는 "피하주사"다.

대규모 명예퇴직에 따른 회사의 일시적인 부담이 크다해도 3~4년내 경쟁력
을 회복할 수 있다는게 이 제도를 도입한 업체들의 전망이다.

선경인더스트리도 현재 13%에 달하는 매출액에서 차지하는 인건비 비중을
한자리수로 내린다는 것이 목표다.

지난해 1천4백여명을 내보내 매출액 대비 인건비 비중을 11.4%에서 9.1%로
낮춘 포철의 성과가 타산지석이다.

문제는 부작용이다.

"쭉정이들만 남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안나가 줬으면 하는 사람들이 많이
나갔다"(K사 L전무)는 것.

경총이 명예퇴직제를 실시하고 있는 기업중 27개사를 조사한 결과 비용
(26.9%)도 문제지만 우수인재의 유출(23.1%)도 심각한 부작용으로 조사됐다.

주요 타깃인 40대 후반~50대 간부보다는 회사쪽이 나가기를 원치 않는
30대~40대 초반 인력이 명예퇴직을 원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도 문제다.


[[[ 계약직 ]]]

8일 신세계백화점의 할인양판점인 E마트 일산점에는 모두 1백44명의 직원이
출근해 고객들을 맞았다.

그러나 이들 모두가 정직원은 아니다.

전체의 22%인 26명은 파트타이머다.

유통업체들을 중심으로 계약직을 선호하는 움직임이 크게 확산되고 있는
것도 고용 리스트럭처링의 또다른 트렌드다.

기업들이 계약직을 선호하는 것은 효율은 별차이가 나지 않지만 임금을
크게 낮출 수 있다는 메리트 때문.

"E마트 경우도 고졸 정규여사원과 파트타이머의 효율은 거의 같은 수준
이지만 파트타이머의 인건비는 같은 일을 하는 고졸 정규여사원의 76%에
불과하다"(E마트 일산점 김석호점장).

포스코 경영연구소에 따르면 신한은행등 7개 시중은행의 파트타이머 고용은
이미 지난94년 1천9백명으로 신규채용 고졸여직원수(3백19명)은 물론 신규
채용 전체 정규직원수(1천20명)을 훨씬 앞서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포드차를 판매하는 선인자동차는 영업에도 계약직을 활용하고 있다.

이런 추세는 벤처기업의 창업이 늘고 멀티미디어 정보통신 등 새로운
직종이 탄생하면서 보다 가속화될 것이라는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경총의 설문조사에서도 조사대상 기업의 75.9%가 경비절감과 인력충원에
효율적이라는 이유로 근로자파견제를 찬성했다.

계약직 선호도가 그만큼 높다는 얘기다.

취업대상자들도 취업이 어려운 만큼 계약직이라도 좋다는 입장이다.

리쿠르트가 대학 4년생 9백4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37.3%가 "계약직
이라도 근무할 수 있다"고 답했다.

"계약직 채용은 연봉제의 도입과 함께 더욱 확산될 전망"(S그룹 Y이사)이다.


[[[ 인력재배치 ]]]

고용 리스트럭처링의 출발은 채용에서부터 시작된다.

올해 각 기업들의 대졸 신입사원 채용 계획에는 불황에서라기 보다 구조
조정을 위해 신규채용은 가능한한 억제하겠다는 의지가 배어 있다.

우선 10대 그룹중 현대 삼성 LG 등 5개 그룹이 채용인원을 확정짓지 못했다.

나머지도 대우그룹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신규채용을 지난해 수준에서
묶거나 줄일 예정이다.

한화는 신규채용규모를 지난해 8백명에서 5백명으로, 롯데는 4백40명에서
3백50명으로 줄여 잡았다.

화이트칼라만 채용을 줄이는 것이 아니다.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은 이미 3~4년전부터 근로자의 자연감소분조차 채우지
않고 있다.

그 대신 자동화와 공장합리화로 효율을 높이고 있다.

연말께 문을 여는 현대 아산공장은 애초부터 같은 규모의 공장에 비해
인원을 3분의 2 수준으로 줄여잡고 있다.

인력재배치도 마찬가지 개념이다.

화이트칼라의 생산성을 파악할 수 있는 기준조차 마련하지 못하던 기업들이
최근들어 외부기관에 용역을 맞겨 이들의 생산성을 계산해 내고 있다.

"관리직 사원들의 상당수를 현장으로 전진배치시켜 인당 부가가치를
극대화한다는 원칙"(코오롱그룹 관계자)이다.

이에 따라 코오롱그룹의 경우 곧 부차장급 7백명 가운데 30%를 감원하거나
영업 생산 수출 등 현장으로 내보내기로 했다.

기아자동차도 승진을 위해서는 3년간 반드시 영업직 근무를 의무화하도록
규정해 전진배치에 나서고 있다.

< 김정호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9월 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