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50주년을 맞는 날이기도 했던 지난해 8월15일 오전 6시 50분 서울
김포공항.

이제 막 도착한 시카고발 비행기를 뒤로 하고 공항 국제선 2청사를 빠져
나오는 20대 초반의 한 젊은 여성에게 고국의 새벽공기는 많은 말을 건네고
있었다.

"부모님이 그렇게 말리셨는데..."

"한국을 떠나 있은지 벌써 11년이나 됐는데..."

오랜 이국생활에서도 동양여인의 다소곳한 미를 그대로 간직한 그녀는
아랫입술을 지긋이 깨물었다.

현대자동차 남양연구소의 이금주연구원.

그는 그런 모습으로 고국에 돌아왔다.

운전자의 지시에 따라 오디오도 켜주고 워셔도 작동시켜 주는 음성인식
자동차개발을 위해 하루종일 컴퓨터와 씨름하고 있는 그는 올해 스물 다섯,
입사 1년의 새내기.

"미국에 건너가서는 대학을 졸업하면 "한국인으로 한국에서 일해야겠다"는
생각에 미국 시민권도 신청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어머니는 이루 말로 다할 수 없을 정도로 펄쩍 뛰셨지만요.

그러던 차에 현대자동차가 미국현지에서 연구인력을 채용한다는 소식은
정말 낭보였어요"

이제 "연구원 이씨"의 사무실은 100만평으로 동양 최대규모를 자랑하는
현대자동차 남양연구소 승용전자설계2팀.

"현대맨 "으로서의 긍지를 갖게 하기에 충분했던 4개월간의 수습을 거쳐
지난 1월 첫 출근을 했다.

"아직 모르는게 많아 선배들의 도움을 많이 받고 있어요.

운전자의 목소리뿐만 아니라 누구의 목소리도 알아들을 수 있는 논리언어
(알고리즘)를 개발하는 것이 최대 과제예요.

아마 2년뒤면 완성차가 나올 수 있을 것 같아요"

그의 말대로라면 우리는 오는 98년께 이씨의 낭랑한 목소리를 고분고분
따라주는 멋진 첨단 자동차를 구경할 수 있을 것 같다.

TV시리즈에서나 봤던 "키트"가 그의 노력으로 우리곁에 온다는 얘기다.

그러나 인사기록표에 나타난 그의 인생은 결코 짧은 것이 아니었다.

"84년 5월 서울 성암여중 1년 중퇴, 89년 6월 독일 칼스루허 아메리칸
하이스쿨 졸업, 94년 5월 미국 일리노이주립대 전자공학과 졸업, 95년 8월
현대자동차 입사"

"미군부대 군무원으로 일하시던 아버지를 따라 식구 모두가 독일로 가게
됐다는 말을 듣고 애들말로 "째지게" 좋았어요.

부러움이 가득 담긴 눈빛으로 "미국도 아니고 독일인데 괜찮겠니"하며
걱정해주던 친구들에게 "한국인 학교가 있을텐데, 뭐"라며 어깨를
으쓱했었습니다"

그러나 친구들의 말이 맞았다.

13살짜리 "소녀 금주"가 첫 이국생활을 시작한 곳은 프랑크푸르트와
슈투트가르트 사이에 있는 소도시 칼스루허.

하지만 한국인 학교는 없었고 그대신 독일의 인문계 중학교 과정인
김나지움에 보내졌다.

그저 ABC나 갓익힌 정도의 영어실력을 가진 금주에게 독일학교가 무슨
의미가 있었을까.

학교와 집을 그저 시계추처럼 오가기 6개월.

그사이 아버지는 독일에서 미국 이민수속을 마쳤고 금주도 그 지역 미국계
학교 칼스루허 아메리칸 하이스쿨로 재입학한다.

이번에도 우여곡절은 뒤따랐다.

학기를 맞추느라 중학교과정을 건너뛰고 우리의 고교1학년 과정인 9학년
으로 입학했다.

"칼스루허에 있을 때 가장 기분 나빴던 것중 하나는 애들이 저를 보고
"차이니즈 걸"이라고 부르는 것이었어요.

그때마다 "I am a Korean"이라고 딱부러지게 쏘아붙였어요.

그럴때면 "나는 어디가도 한국인"이라는 자부심이 생생히 느껴지곤 했어요"

그러나 자상한 수학교사 짐 프레질 선생님과의 만남은 행운이었다.

백지 답안지를 냈으나 다그치는 대신 집에서 찬찬히 풀어오라던 프레질
선생님에 이끌려 수학에 취미를 붙였다.

그렇게 수학책과 씨름한 덕택에 고교 졸업후 미국에서 운수업을 개업하신
아버지를 따라 도미해서는 일리노이대 전자공학과에 입학하게 됐다.

오전시간 내내 컴퓨터 스크린을 바라보느라 지친 머리를 식힐겸 점심시간을
이용해 본관 건물앞 조그마한 연못가에 앉았다.

"우리 회사가 적어도 일하는 사람 말리는 회사는 아니잖아요.

그러니 이곳에서 여한없이 일해볼래요.

중역이 되면 할말 많은 제 인생에 대한 자서전도 쓰고 싶어요.

하지만 어머니를 달래기 위해 2, 3년만 한국에 있다가 다시 들어가겠다고
한 말은 거짓말이 될 것 같아 마음이 아파요"

(한국경제신문 1996년 9월 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