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순원 < 현대경제사회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물가 불안이 가중되고 있다.

올들어 8월말까지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4.4%를 기록하여 연간 억제목표인
4.5%를 위협하고 있다.

게다가 앞으로 물가 불안을 부추길 요인도 산적해 있다.

9월중에는 국제원유가 상승에 따른 국내 석유류가격 인상과 이사철을
맞아 전세가 상승이 대기하고 있고 추석을 맞아 제수용품의 가격 인상도
예상된다.

최근의 물가상황은 매우 복합적인 요인이 중첩되어 있다.

그래서 물가당국이 과연 물가를 제대로 통제할수 있을지 우려의 목소리가
드높다.

첫째 올들어 환율이 거의 6%나 올라 물가불안을 가중시키고 있다.

그렇다고 위험수위를 넘어선 국제수지 적자 때문에 환율을 내릴 수도 없다.

둘째 곡물 원유 등 물가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큰 국제 원자재가도 심상치
않다.

셋째 인상요인이 누적되어 있는 공공요금, 인플레 심리에 민감한 개인
서비스요금도 물가불안을 더하게 하지만 행정력을 통한 물가통제는 한계가
있다.

자칫 잘못하면 가격은 그대로지만 품질은 더 나빠지는 눈가리고 아옹식의
물가안정이 만들어진다.

이러한 단기적인 요인 이외에도 더 심각한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

교과서적인 얘기지만 공급이 수요를 턱없이 따라가지 못한다.

나라 전체에 만연되어 있는 과소비풍조가 문제다.

미래를 대비하는 저축보다는 현재의 소비 지출을 늘리는 방향으로
소비패턴이 변화하고 있다.

금년 1.4분기중 도시근로자 가구의 월평균 소비지출은 14.7%가 증가하여
92년 이후 증가율이 가장 높았다.

특히 월평균 외식비 지출이 19.5%나 늘어 전체 식료품비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35.2%로 지난해의 33.5%보다 높아졌다.

또한 올 1.4분기중 총수입증가율이 17%로 지난해의 32%에 비해 크게
둔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고급 소비재수입은 지난 상반기중 무려 21.7%나
증가했다.

한편 올해 연간 해외여행경비는 약80억달러로 추산되는데, 이는 작년의
63억 달러보다 27%나 증가한 수치이다.

소득증대에 따르는 소비는 권장해야겠지만 남의 소비를 충동하고 모방하며
과시하는 소비문화가 두드러진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고비용 체질도 물가불안을 악화시키는 요인이다.

노동생산성을 훨씬 뛰어넘는 임금상승률은 물가를 크게 자극하고 있다.

정부의 자료에 따르면 87년부터 94년까지 우리나라 제조업체들의 실질
임금상승률은 연평균 10.4%에 달해 주요 선진국들의 5배를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더구나 낮은 생산성에도 불구하고 서비스 부문의 임금이 제조업임금에
동반 상승함으로써 물가상승을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

낙후된 국내 유통구조도 문제다.

특히 농수산물의 경우 생산자와 소비자사이에 7~8단계의 중간 유통단계가
개입되어 물가안정을 가로막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전통적인 물가 대책이라 할수 있는 통화긴축은 매우
제한된 힘만을 가질 뿐이다.

통화긴축 정책은 물가지수를 어느 정도 안정시키겠지만 가뜩이나 고금리가
문제가 되고 있는 현재의 상황에서 돈줄을 죈다는 것은 경기침체를 더욱
심화시킬 수 있다.

현재와 같은 경기 하강국면에서 소비의 안정적 증가는 경기둔화를
보완해줄수 있는 긍정적인 측면도 기대되기 때문이다.

더욱이 물가반영도가 높지 않은 생필품이나 기본서비스요금을 안정시키지
않으면 지수상의 물가안정은 서민에게는 큰 의미가 없다.

따라서 현재 악화되고 있는 물가를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좀더 근본적인
처방이 나와야 한다.

첫째 정부가 물가안정을 선도하는 의미에서 공공요금 상승을 억제하기
위해 공기업의 경쟁력을 제고하는데 힘써야 한다.

둘째 건전한 소비문화를 육성하는 것이 시급하다.

정부에서도 국민들이 여가생활을 건전하게 보낼수 있게 시설을 확충하는
방안을 강구하고 선진국의 검소한 소비문화를 소개하는 데 신경써야 한다.

셋째 우리의 식생활을 간소화해야 한다.

도시 쓰레기의 상당부분이 식생활과 관련이 있다.

식생활이 간소화되면 물가를 안정시키고 환경오염원을 줄일 수 있다.

넷째 침체된 국민의 저축동기를 다시 되살려야 한다.

특히 장기 저축을 늘릴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수입 시장이 완전히 개방되어 있고 부동산가격의 급등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는 장기 저축의 동기를 충분히 이끌어 낼 수 있다.

다섯째 고비용 체질이 싹트는 토양을 바꾸어야 한다.

내가 남보다 더 많은 소득을 갖고 더 나은 삶의 질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내가 남보다 더 많은 부가가치를 창출해야 한다는 인식이 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경제 주체 사이에 각자가 생산하는 재화나 서비스의 가격을
서로 더 올리려는 끝없는 인상 게임이 지속된다.

이는 물가를 상승적으로 올려 모두가 손해를 보는 게임이 될뿐이다.

끝으로 유통구조 개선이 있어야 한다.

이것이 곧 소비자가 피부로 가장 가깝게 느끼는 농수산물가격 안정을
위한 첫걸음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9월 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