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보호원이 5일 공청회를 통해 발표한 제조물책임법(PL법)시안은
법제정의 당위성에도 불구하고 보완해야 할 점이 적지 않다는 것이
우리의 판단이다.

PL법이란 제조물의 결함으로 인해 소비자가 생명, 신체 또는 재산상의
손해가 났을 때 제조물생산자 또는 유통업자가 배상을 해야 하는
소비자보호제도로서 구미 일본 등을 비롯 현재 25개국에서 이미
시행중이다.

우리나라에서도 PL법 제정을 둘러싸고 몇년전부터 소비자단체들과
업계간에 마찰이 있어 왔지만 OCED (경제협력개발기구)가입을 계기로
정부가 오는 98년부터 이를 시행하기로 결론을 내림으로써 이 법의
도입시기를 둘러싼 논쟁은 일단락된 셈이다.

이제 논의의 초점은 법안의 내용에 모아지고 있다.

소보원은 이번에 내놓은 시안에서 "제조물을 일반적인 방법으로
사용했음에도 손해가 발생한 경우 제조물에 결함이 있는 것으로
인정, 제조자에게 책임을 묻는다"고 규정함으로써 소송에서 소비자가
직접 결함을 입증해야 하는 부담을 크게 줄였다.

이는 피해자가 제조물의 결함을 입증하지 못하면 피해보상을 받지
못하는 일본이나 유럽의 PL법보다 훨씬 강력하다는 점에서 제조자측의
현실을 무시한 일방적 발상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또 이 시안은 제조물의 범위에 "부동산중 분양공급주택"을 포괄시킴으로써
아파트 하자보상을 둘러싼 분쟁의 홍수가 예상된다.

제조물의 범위를 처음부터 너무 넓게 잡을 경우 거의 전산업이 PL법의
적용을 받게 돼 국내 산업계에주는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닐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완성품의 제조업자는 물론 원재료나 부품을 만든 제조업자와
제조물수입업자, 직접 제조는 안했더라도 제조물에 상호 등 기호를
표시한 사람과 판매업자도 제조물 결함에 따른 책임을 지도록 규정한
것은 제조자의 범위를 지나치게 확대 해석한 것이 아닌지 묻고싶다.

특히 이 규정대로라면 사고원인이 규명되지 않을 때는 하청업체인
중소기업에 상대적으로 큰 책임이 전가될 소지가 커 이에 대한 정책적
배려가 있어야 할 것으로 본다.

일본의 경우 지난 94년 PL법 제정 당시 국회에서 중소기업자에
대한 특별배려를 결의함에 따라 "중기대상 제조물 배상책임보험"이
개발되는 등 여러가지 중기보호대책을 시행하고 있음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덧붙여 높은 제조 비용으로 성장잠재력을 잃어가고 있는 국내 제조업의
실정을 감안할 때 배상 한도액을 설정하는 것도 고려해볼 일이다.

원칙적인 면에서 우리는 우리경제도 공급자위주에서 소비자위주로
바뀜에 따라 소비자 피해구제의 영역 및 창구확대는 필연적 추세라고
보아 소보원의 적극적인 소비자보호 의지를 환영한다.

그러나 의욕이 지나쳐 현실과는 동떨어진 선언적 의미만이 부각된
법조문을 만들어 놓아서는 안된다.

거듭 강조하지만, 소비자보호의 이상과 기업현실을 조화시킨 균형있고
실효성 있는 PL법이 돼야 한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9월 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