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을 가른다.

핸들을 꽉잡은 두 팔에 숨막힐 듯한 속도감이 전해진다.

좁은 차안에서 또다시 혼자만의 외로운 싸움이 시작된다.

김주현(27).

스피드에 몸을 맡기고 인생을 질주하는 여성 모터카레이서.

"경주에 들어서면 남보다 먼저 달리는 것만 생각해요"

한번 시작한 이상 이 분야에서 최고의 자리를 꿈꾼다.

1등만이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경주라는 종목의 특성때문일까.

강한 승부욕이 어투에서 자연스럽게 배어나온다.

드라이버와 레이싱머신을 두 주역으로 스릴과 기록에 도전하면서 명예와
영광을 좇는 승부의 세계인 모터스포츠.

그녀가 이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것은 어찌보면 누구나 갖고 있지만
숨겨진 기질 탓인지도 모른다.

"세상밖으로" 탈주하는 꿈을 꾸는 모든 사람들처럼.

"중학교때부터 기분이 우울할 때면 집에 있던 오토바이를 타고 거리를
달리곤했죠"

더욱이 태권도실력이 공인 3단일 정도로 운동신경이 발달한 그녀의 눈에
우연히 띈 모터스포츠 잡지의 사진 한장이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한 여성레이서가 우승컵을 들고 환하게 웃는 모습이었어요.

갑자기 그 자리에 내가 섰으면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자신감으로 한창 가슴이 부풀어 있던 21세때 운전면허를 딴뒤 5개월만에
아마추어팀인 "마라아치"에 가담했다.

그리고 이 세계에 푹 빠져들면서 다니던 의류회사를 아예 그만두고
프로팀인 현대정유의 오일뱅크팀으로 옮겨 이젠 6년째 전문레이서의 길을
걷고 있다.

"기회는 사람을 기다리는게 아니잖아요.

제가 직접 찾아가 열심히 배우겠다고 말했죠"

지난해 원메이커 그룹에서 시즌종합우승을 차지한 덕에 레이서로 한단계
승격해 올해부터는 1,600cc이하 차들이 경주하는 투어링B그룹에 출전한다.

아직까지는 6위를 차지한 게 올해의 최고 성적.

"체력이 약한게 단점이긴 하지만 돌발상황에 침착하게 대처하는 면은
또 장점이기도 하죠"

그만큼 스스로를 잘 안다는 얘기다.

보기와는 달리 한번 출전하면 보통 2~3kg씩 몸무게가 빠질 정도로 격한
운동이란다.

두꺼운 보호복을 입은데다 차 무게를 줄이기 위해 좌석과 핸들을 제외한
모든 장치를 제거했기 때문.

더욱이 섬세한 기술구사를 위해 파워핸들도 사용하지 않아 엄청나게
힘이 든다.

경기가 끝나고 나면 차문을 열고 나올 힘조차 없을 정도라는 것.

"운전면허만 있으면 누구나 자격있어요.

남녀차별도 없고요.

선수 라이선스와 경기장라이선스만 갖추면 되죠.

하지만 돈이 무척 많이 필요할 걸요"

세계 3대스포츠의 하나로 꼽히지만 아직 우리나라는 초창기단계에 머물러
있는 모터스포츠.

모든 일이 그렇듯이 언제나 시작은 눈물로 시작하는 법이다.

그녀도 오기 하나로 버텨왔다.

목표를 눈앞에 두고 물러설수 없다는 각오다.

집에서도 이젠 말리지 않는다.

"경마가 말이 7, 사람이 3이라고 하듯 레이싱도 마찬가지죠.

차를 다루는 미케닉(기술자)과 드라이버, 그리고 레이싱카가 삼위일체가
되는게 중요해요"

필승을 위한 기본전략이다.

"징크스요?

그건 선수가 자신이 없을 때 만드는 것 아녜요?

오직 승리만 생각해요"

이전에는 고양이만 보면 재수가 없다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아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기 때문.

사고로 사망한 브라질의 전설적 드라이버 세나를 좋아한다는 그녀는
체커기(1위로 골인하는 드라이버에게 보내는 깃발신호)를 받을 때의 기분은
카레이서들만의 전유물이라고 한다.

"국민적 스포츠로 보급되기 위해서는 정책적인 육성이 필요한데 대통령이
이런 스포츠가 있는 것을 아는지 모르겠어요"

언젠가는 포뮬러(fomular)카를 모는 레이서가 되겠다는 희망을 안은채
그녀는 오늘도 자신만의 고독한 질주를 시작한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9월 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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