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릉과 같이 국을 마시다가 금계가 죽었고 금계가마신 국에 독물인
비상이 들어 있는 것이 판명되었으므로 평소에 금계에 대해 원한을 품고
있던 향릉이 금계를 독살했다는 혐의를 충분히 받을 만하였다.

그래서 사람들이 처음에는 향릉을 관청에 넘겨주려고 묶어두었는데
설반의 동생 보채가 국을 끓여 온 보섬이 더 의심스럽다고 이의를 제기하여
보섬도 함께 묶어두었다.

보섬은 향릉이 금계를 독살한 것이 틀림 없다고 바락바락 악을 쓰며
항변하다가 금계의 방에서 비상 주머니가 발견되고 하여 결국 일의
자초지종을 실토하지 않을 수 없었다.

"향릉이 설과 도련님과 친해지는 것 같아서 내가 향릉에게 주의를 주니
향릉이 기분이 상해 서로 말다툼을 하게 되었죠.

그런데 금계 아씨가 향릉이랑 같이 먹겠으니 국을 두 그릇 끓여 오라고
하지 않겠어요?

그래 향릉에게 화가 나 있던 터라 내가 향릉이 먹을 국에 소금을 듬뿍
쳐넣었죠.

그리고 나서 국 그릇들을 들고 방으로 들어가려고 하니 금계 아씨가
문께에서 국 그릇을 받아 안으로 들어갔죠.

내가 가지고 들어갔으며 향릉이 쪽으로 소금을 친 국 그릇을 놓았을텐데
금계 아씨가 들고 들어갔기 때문에 국 그릇 위치가 어떻게 되었나 여간
궁금하지가 않았죠.

잠시후 방을 들여다보니 향릉은 아직 자리에 누워 있고 금계 아씨는
안으로 들어갔는지 보이지를 않았죠.

그런데 소금을 잔뜩 친 국그릇이 금계 아씨 쪽으로 놓여 있는 것이
아니겠어요?

그 국그릇에는 나만 알 수 있도록 살짝 표시를 해두었거든요.

난 깜짝 놀라 몰래 방안으로 들어가서 국그릇들 위치를 바꿔놓았죠.

그때까지 향릉은 감기 기운으로 까라져 있어 내가 들어왔다 나가는 것을
눈치 채지 못하는 것 같았어요.

그리고 얼마후 향릉이 금계 아씨가 죽었다고 비명을 질렀죠"

이런 보섬의 진술에 비추어 보면 금계가 향릉을 독살하려다가 오히려
자기가 그 독을 마셨음이 분명하였다.

이렇게 금계 독살 사건으로 온 집안이 어수선할 때도 보옥은 어떤
일에도 관심이 없는 듯 실성한 사람처럼 왔다갔다 할 뿐이었다.

대부인을 비롯한 집안 어른들은 보옥이 누나 원춘의 죽음으로 충격을
받아서 그런 점도 있지만 무엇보다 늘 차고 있던 통령보옥을 잃어버려
그 구슬의 영험한 힘이 빠져나가 그렇게 되었다면서 다시 한번 대대적으로
통령보옥을 찾아낼 방도를 강구하기에 이르렀다.

대관원과 영국부,녕국부에 이르기까지 하인들과 하녀들의 몸 검색이
실시되고 방마다 철저한 점검이 이루어졌다.

하지만 통령보옥은 하늘로 증발해버렸는지 땅으로 꺼졌는지 그 어디에서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8월 3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