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기업의 해외시장 공략이 본격화되고 있다.

수출품도 종전의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에서 자가브랜드제품으로 전환
되고 있으며 해외생산기지가 늘어나고 있다.

저가제품을 위주로 한 단순한 수출마케팅전략에서 다국적기업다운 글로벌
전략의 수립이 필요한 때다.

그러나 국내 기업들은 아직도 해외시장의 문화와 소비욕구에 부응하는
마케팅전략을 실시하지 못하고 있다는게 일반적인 평가다.

삼성전자의 "통합마케팅커뮤니케이션", LG전자의 "스포츠마케팅",
대우자동차의 "현지화전략" 등 국내기업의 대표적인 해외마케팅성공사례를
방송광고공사가 최근 발간한 "광고산업의 세계화"를 통해 소개한다.


<> LG전자의 중남미시장 공략 =중남미지역에서 골드스타(Gold Star,
LG전자의 옛이름)란 브랜드를 활성화시키기 위해 다양한 광고공세를
벌였으나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고민 끝에 내놓은 것이 축구를 이용한 스포츠마케팅이다.

중남미 최고의 인기스포츠인 축구경기를 후원함으로써 자연스럽게 브랜드를
알리고 좋은 이미지도 심어주자는 것이다.

LG전자는 "골드스타"와 축구에서 가장 극적인 순간인 "골인"의 발음이
비슷하다는 점에 착안, "골(Gol) 패키지"란 캠페인을 전개했다.

이 프로그램에 따라 아나운서들은 골인장면 때마다 "골드스타 오디오
비디오, 유 아 베스트 플레이어"를 소리높여 외쳤다.

동시에 TV화면 밑부분에선 축구공이 굴러가며 Gold Star를 한 글자씩
만들어갔다.

90년 스페인월드컵에서 시작된 이 캠페인은 95년 코파 아메리카나대회까지
주요 이벤트마다 계속됐다.

골인장면과 연결된 골드스타의 강하고 차별화된 이미지는 대성공을 거뒀다.

90년대 초반 제로에 가깝던 브랜드인지도는 이후 지속적으로 높아져 95년
에는 최고 40%까지 올라갔다.

심지어는 동네아이들이 축구시합을 하다 골인이 되면 "골드스타"라고
외치며 삼바춤을 출 정도로 화제를 모았다.


<> 대우자동차의 서유럽시장 진출 =대우자동차의 해외진출 방식은 철저한
"현지화 전략"으로 요약된다.

지역 소비자들을 적극적으로 판촉행사에 참여시키는 소비자반응 유도형
캠페인이 특징.

95년4월 대우는 영국시장에 진출하면서 여성운전자를 대상으로 한 안전
운전캠페인 "대우 레이디드라이버 95"를 실시하여 화제를 모았다.

영국에서는 차량을 구매할 때 여성의 영향력이 큰데다 특히 안전도를
중요하게 여긴다는 점에 착안한 것이다.

한편으론 운전기술컨테스트를 개최, 유명한 여성드라이버를 참여시켜
대중적인 관심을 유도했다.

독일시장에 진출할 때는 TV를 비롯 신문 잡지 옥외광고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추첨권을 나눠준 뒤 경품을 주는 광고캠페인을 실시했다.

대우자동차의 현지화전략은 생산과 판매, 인력 및 자금의 조달 등 경영
활동 전반을 대상으로 이뤄지며 루마니아 인도 베트남 우즈베크공화국 등
제3세계권으로 급속히 확대되고 있다.


<> 삼성전자의 러시아시장 침투 =삼성전자가 러시아시장을 공략할 때 가장
주안점을 둔 부분은 "통합적인 마케팅커뮤니케이션"이었다.

단순히 TV광고에만 의존하기 보다는 인쇄광고 PR 딜러 대상의 판촉행사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소비자의 흥미를 유발시키고 화제를 불러 모으자는 것.

주력제품이던 "바이오TV"와 경쟁제품의 차별화 포인트를 찾아내는 것도
급선무였다.

삼성전자는 러시아시장에서는 "어느정도의 과장"이 성공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란 판단하에 각 매체별로 메시지의 수위를 조절하며 캠페인을 벌였다.

TV는 집중화전략을 선택하여 단기간에 대대적인 광고공세를 펴며 "소비자의
건강을 생각하는 텔레비전"이란 점을 부각시켰다.

인쇄매체에서는 양파 국화 금붕어 등 동물을 대상으로 한 실험결과를 제시
하며 소비자들에게 "바이오(Bio)"의 뜻을 설명하는 "고지성 광고"를 실시
했다.

이와 함께 러시아의 유력신문사 기자들을 한국으로 초청, 설명회를 갖는가
하면 딜러와 세일즈맨을 대상으로 한 각종 교육 및 판촉행사를 병행했다.

그결과 삼성전자의 인지도는 16%에서 48%로 급상승했다.

판매도 전년대비 50%가 늘어났다.

무엇보다 "삼성전자" 브랜드에 대한 우호적인 분위기가 형성된 것이
캠페인의 가장 큰 성과였다.

< 이영훈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8월 2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