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정우 <삼성물산 건설부문상담역>


얼마전 정부에서는 2020년까지 우리나라를 선진 7국으로 끌어올리기
위한 장기비전을 제시한 바 있다.

이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2020년에 국내총생산이 4조910억달러로 영국
캐나다를 제치게 되고,교역부문에서도 영국 이탈리아를 뛰어넘어 세계
6위국이 된다는 것이다.

불과 얼마전만 해도 보릿고개등 참으로 어려웠던 시절을 보낸 우리로서는
성사여부는 제쳐두고 생각만 해도 가슴 벅찬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장기비전이 현실로 된다면 우리나라는 남보다 뒤늦게 경제발전에
뛰어든지 1세기도 안된 짧은 기간에 단군역사이래 최대의 민족웅비의
시점을 맞이하는 것이다.

우리는 최근 소득 1만달러를 돌파해 고소득시대로 당당히 접어들었다.

그동안 국민소득1만달러 시대를 열기까지 우리가 감내했던 고통과 희생,
그리고 노력은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었다.

온 국민이 허리띠를 졸라매고 먹을 것 안 먹고 입을 것 안입는
근검절약과 개미처럼 열심히 일하는 특유의 근면성, 정부의 경제개발에
대한 강력한 추진력이 그 원동력이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정치적 이데올로기를 앞서는 치열한 경제전쟁 시대를
맞아 단순히 과거의 근면성만으로는 더 이상 경쟁에서 살아 남기가
어렵게 되었다.

이렇게 과거보다 어려워진 여건속에서 현재 소득보다 3~4배 정도를
더 끌어올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리고 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경제적 수치를 달성한다 하더라도
양적인 풍요만 가지고 우리나라가 선진국으로 진입했다고 볼수는 없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고소득에 걸맞는 문화와 의식수준이 향상되어야만
진정한 선진국이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국민소득 1만달러인 우리사회의 모습은 지금 어떠한가.

다리가 끊어지고 백화점이 무너지는 나라로 오인되고 지역이기주의에
밀려 경부고속철도나 신공항등 서둘러야 할 주요 국책사업이 차질을 빚고
있다.

그런가 하면 기업활동이 경제외적 논리에 크게 영향을 받고, 많이
완화되었다고는 하나 아직도 각종 규제가 의욕적인 경제활동을 어렵게
하는게 현실이다.

황금만능과 배금주의에 물든 끊이지 않는 부정사건과 날로 흉포화해지는
각종 범죄가 만연하고 있다.

자기에게 피해가 오지 않는 일이면 이웃의 고통에 대해서 나서려 하지
않고 불의를 뻔히 보면서도 외면하는 무책임 무관심이 팽배해있다.

개인이나 집단 이기주의가 판치는 것을 탓하면서도 내가 사는 지역과
나와 무관한 일이라면 남의 일로 돌려 버린다.

국민소득 1만달러 국민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부끄러운 우리
사회의 모습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것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우리 국민 대다수가 문화시민으로서의
기본질서를 전혀 안지킨다는 점이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과정보다는 결과를 중시하는 그릇된
사고가 판치고 있다.

이 때문에 일상생활에서 반드시 지켜야할 기본질서가 오히려 목표달성의
장애물로 치부되는 가치의 전도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런 잘못된 시민의식은 여러군데서 쉽게 목격된다.

늘어나는 차량을 감당하지 못하는 우리나라 도로사정이 주범이기는
하겠으나 잘못된 우리의 교통문화가 체증을 더욱 부채질한다.

남보다 조금이라도 먼저 가려고 틈만 있으면 비집고 들어오는 차량들,
조그만 접착사고에도 차량의 원활한 소통을 먼저 고려하기 보다는
길한복판에 차를 세운채 잘잘못을 소리높여 따지는 광경은 어디서나 쉽게
볼수 있는 우리의 모습이다.

금연지역에서도 태연히 담배를 물고 있고, 순서를 기다려 줄지어
입장하기보다는 서로 먼저 입장하려고 밀고 당기는 경기장이나 공연장의
모습들은 상대방에 대한 이해와 배려보다는 나만 편하고 보자는 무질서와
도덕불감증의 또 다른 모습이다.

다가오는 21세기에 우리가 진정한 의미의 선진국으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선진문화를 향유할 자세부터 갖추어야할 것이다.

2000년의 ASEM회의와 2002년 월드컵축구 한일공동개최등 굵직굵직한
국제적 행사를 앞두고 있는 우리로서는 모든것을 남의 탓으로만 돌리려는
생각보다는 나부터 양보의 미덕을 발휘하여 각자가 기본질서 지키기에
앞장서는 성숙된 문화시민으로서의 역량을 보여주는 자세가 절실히
요구된다 하겠다.

이러한 바탕위에 정부는 과감하게 불필요한 규제를 풀어나가고 기업은
기업대로 기술투자와 인력양성등 경영효율화에 보다 많은 노력을 기울이며
국민은 국민대로 과거보다 더욱 열심히 뛸때 우리가 목표로 하는 선진국은
우리곁에 성큼 다가올수 있을 것이다.

결국 선진국가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 국민 개개인이 일류
시민으로 거듭나야만 가능한 일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8월 2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