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날개 점검"

"뒷날개도 이상무"

"러더(발로 방향을 조정하는 페달) OK"

활주로 끝에 다달라 러더를 밟으면 "윙"하는 엔진소리가 귀청을 찢는다.

불과 1~2초만에 활주로는 끝나가고 달리는 속도는 시속 50마일.

조종간 잡은 손을 살짝 당겨보면 어느새 몸은 "둥실" 하늘에 올라있다.

아래엔 전철역 모델하우스 자동차 그리고 사람들.

무심한 일상이 흐르고 있다.

"하늘을 날고 싶다"

누구나 어린시절 한번쯤 가져봤음직한 꿈이다.

더 높이 더 멀리 날아올라 바다건너 무인도에도 가보고 저 땅끝 무지개도
잡아보고.

무언가를 한없이 동경하던 시절, 한없이 자유롭고 싶던 시절, 마당에
내려서서 저 멀리 날으는 새를 멍하니 쳐다보던 기억도 있다.

15살 배으뜸군이 갖고 있는 하늘에 대한 기억중엔 한가지가 더 있다.

오산비행장에서 비행 교관을 하던 아버지 배영호씨의 비행기를 타본
기억이다.

아빠가 휴가를 얻는 날 오산비행장의 까만 4인승 "세스나"기는 여섯살배기
그와 아빠 엄마 이렇게 세가족을 구름위에 얹었다가 다시 제주도에도
강릉에도 내려놓곤 했다.

자라면서 지금까지 줄곧 전투기조종사를 꿈꾸는 것이나 15살의 나이에
경항공기 조종사자격증을 따게 된 것도 다 그때의 경험 때문인 것 같다.

지난 8월10일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나이어린 비행사가 탄생한 날이다.

학과성적은 같이 시험본 어른들을 포함해도 가장 높은 98점(합격선은
70점).

실기테스트에서도 시험관은 흠을 잡아내지 못했다.

지난 겨울 안산에서 럭키항공 소속 "에임 하이 항공클럽" 교관인 아버지를
만나 경비행기를 처음 타본 배군은 그후 아버지를 조르고 졸라 올 여름방학
부터 비행기 조종을 배울 수 있었다.

"가장 어려운 것은 실기가 아니라 학과시험이었습니다.

영어실력도 모자란 데다 전문적인 물리학 지식도 필요하거든요"

이 때문에 학교(원주 학성중학교)의 영어성적과 물리성적은 몰라보게
향상됐다.

비행할 때는 항상 안전에 최선의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조금이라도 바람이 이상하면 그날 비행은 포기한다.

"한번은 해안 활주로에서 아버지와 훈련을 하다가 지시를 어긴 적이
있었어요.

아버지는 다섯번 이착륙 연습을 하고 돌아오라는 뜻으로 다섯 손가락을
폈는데 저는 시속 50마일에서 이륙하라는 것으로 알아들었지요"

아들을 잃어버린 것으로 생각한 아버지 배영호씨가 하릴없이 발만 동동
굴렀던 것은 물론이다.

으뜸군은 그날 아버지에게 호된 꾸지람을 들었다.

이후 그는 비행할 때마다 안전점검을 철저히 하게 됐다.

비행시간 30시간의 햇병아리 조종사 배으뜸군.

운전면허도 딸 수 없는 나이에 비행면허부터 딴 이 소년은 아직 대부도까지
밖에 나가 본 적이 없다.

그가 애용하는 미 퀵실버사의 초경량 항공기 GT-500은 항속 거리가 짧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꿈은 더 커다란 비행기로 전국 아니 전 세계 구석구석을
날아보는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8월 2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