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4년 두산그룹은 연봉제를 도입하면서 맨먼저 "수당 없애기" 작업을
벌였다.

가족수당과 직위수당 직책수당 등을 모두 하나의 연봉안에 녹여 넣자는 것.

하지만 이 작업은 미완성으로 끝났다.

연월차 수당이 걸림돌이 된 때문이다.

현행 법규상으로는 연월차 수당을 능력급 연봉의 울타리안에 집어넣을 수
없었다.

연월차는 반드시 지급해야 한다(근로기준법 제 48조 3항)는 규정이 돌출
변수로 등장한 것이다.

법도 그랬지만 연월차를 능력급으로 계산하기도 사실상 불가능했다.

"쉬는 날의 노동력, 말하자면 "놀고 쉬 능력"까지 차등화해야 한다는 것은
사실상 난센스였다"(인사팀 김명우과장).

때문에 연공제를 도입한 두산의 연월차는 완전 연공서열식이 돼 버렸다.

연봉제를 하면서 이런 반능력급 셩격의 수당을 따로 갖게 되는 모순이
생겨난 것이다.

두산은 이 모순을 극복키 위해 연봉제 도입 3년차인 96년부터 리프레시
휴가를 실시했다.

리프레시 휴가로 직원들의 연월차를 "소진"하게끔 만들었다.

연봉제의 취지를 살려 능력 급여속에 연월차 수당을 넣어 버렸으면
좋겠는데 법규상 그럴 수 없으니 사실상 수당 자체를 무력화시킬 수밖에
없다는 의도에서 고안된 것이다.

그렇지만 리프레시 휴가제도 말이 많다.

근본적인 해결책이라기 보다는 "돈 대신 놀아라"는 식의 비봉책에 불과
하다는 지적이다.

비단 두산뿐만이 아니다.

연봉제를 하고 있는 기업에겐 연월차 수당이 미운오리새끼처럼 돼 있다.

기준연봉이 되는 기본급여와 상여금 등 연봉 총액을 월별로 나눠 지급하는
연봉제의 원칙을 충실히 따르면서도 이런저런 이유로 "수당 완전 철폐"를
못하고 있는 탓이다.

과연 어떤 수당들이 남아 있나.

지난 72년부터 연봉제를 실시해온 연봉제 원조격인 한국유니시스의 경우
영업수당과 학자금 휴가비가 살아남았다.

삼성HP는 중식대와 차량유지비 교통비를 없애지 못했다.

한양은 자격수당과 시간외수당을, 일진은 식대와 자가운전비 연월차수당을,
해성병원은 직책수당을, 시즈는 해외출장수당과 기능수당을 각각 건드리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SDS는 귀성여비나 추석상여금 하기휴가비 등을 그때마다 따로 지급하고
있다.

이렇게 현재 일부기업에서 실시되고 있는 연봉제는 수당과 부가급여를 계속
고집한채 옛 것과 지금 것을 적당히 얼버무려 놓은 절충안에 불과하다.

"심플 페이" 또는 "원셧 페이"를 통해 능력급제로 가는 길목에 "복잡하고
낙후된 임금구조"가 버티고 있다고나 할까.

자연히 연봉제를 도입한 기업들은 2중 3중으로 업무를 처리해야 하는
번거로움을 겪고 있다.

업무처리만 번거로우면 그래도 괜찮다.

연월차수당이나 귀성여비 등 차등없는 수당지급은 연봉제를 통한 능력급제
자체를 탈색시키고 있다는게 더 문제다.

그래서 국내기업들 사이에선 생겨난 신조어가 "한국형 연봉제".

한국에선 수당과 복리 후생 차원의 부가 급여등을 유지하는 성격의 연봉제
라야 성공할 수 있다는 뉘앙스가 짙게 배인 말이다.

여기엔 또 서구식 연봉제와는 달리 연봉 삭감에 한계를 느낄 수 밖에 없는
"하방경직적" 연봉제라는 뜻도 스며들어 있다.

제수당과 부가급여 퇴직금 등이 "따로 국밥"으로 혼재하는 어설픈 연봉제.

이것이 한국형 연봉제의 실상인 셈이다.

문제는 이같은 한국적 연봉제의 근본적 개선이 어렵다는 것이다.

우선 연봉제에 적극 나서야 할 기업들이 한국형 연봉제를 수용문화 탓으로
돌리고 있기 때문이다.

"서구의 전형적인 연봉제에서야 수당이나 휴가비 퇴직금 등은 개념조차
사라졌지만 오랜 연공서열의 전통이 살아있는 한국에서는 그런 전형적인
연봉제의 통용은 어렵다"(미원그룹 관계자)는게 대부분 기업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한국형 연봉제는 미국식 성과급이나 일본식 능력급 형태의 연봉제를
직수입한 것이 아닌 우리의 독특한 문화와 정서를 담아낸 신토불이 연봉제
라고 표현할 수 있다"(SDS 관계자)고 절름발이 연봉제를 미화시키는 경우
까지 있다.

완전 연봉제를 가로막고 있는 또 다른 요인은 두산그룹의 예에서처럼
법제적 뒷받침이 없다는 점도 들수 있다.

한국형 연봉제라 해서 물론 나쁠 것은 없다.

그러나 "임금 구조의 복잡성을 개선치 않은채 한국형이라는 말로 미화해
봤자 능력 본위의 사회로 가는 길만 늦취질 뿐이다. 능력껏 일하기보다는
빈틈을 타서 놀고 보자는 분위기를 조장할 수도 있다"(서울대 K교수).

이같은 지적을 뒤집어 해석하면 임금구조가 단일화되기만 하면 "순도
1백%"의 선진 연봉제 실시가 가능하고 그렇게 되면 고비용 저효율구조도
어느정도 개선될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 심상민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8월 2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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