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상심시도''

한국은행 본점 8층에 있는 이경식 한국은행 총재방에 들어가면 이런 글이
쓰인 액자가 먼저 눈에 띈다.

"항상 평상심을 유지, 모든 일을 처리하는게 바람직하다는 뜻"이라는게
이총재의 설명이다.

이총재는 부산 폐지폐 유출사건이 터진 직후인 지난해 8월24일 한은
총재로 취임했다.

잇따른 사고로 흔들리던 한은이 중앙은행으로서 제모습을 찾아가고
있다는게 대체적인 평가다.

그러나 이총재에 대한 평가는 지난 1년보다 남은 3년에 달려 있다.

"통화관리방식도, 한은 내부개혁도 요란하지 않게 꾸준히 추진하겠다"고
강조하는 이총재를 만났다.

=====================================================================


[[[ 만난사람 = 정만호 경제부장 ]]]


-중앙은행총재로 취임하신지 벌써 1년이 지났습니다.

스스로 지난 1년을 평가하시면 어떻습니까.

<> 이총재 =나름대로 열심히 했다고는 하지만 아직 만족할만한 수준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각종 사고속에서도 내부기강을 확립하려 애썼고 통화의 안정적 공급과
금융자율화의 확대를 위해 노력했습니다.

어수선했던 내부분위기가 점차 안정을 찾아가고 있는게 가장 큰
보람입니다.


-총재께서는 취임하자마자 한은의 내부개혁을 강조하신걸로 기억되는
데요.

<> 이총재 =진정한 개혁이란 하루아침에 이뤄질 수 없습니다.

시간이 지나서 뭔가 바뀌었구나 생각되는게 진정한 개혁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조용히, 그러나 꾸준히 한은개혁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총재께서는 금통위회의록을 공개하는 등 금통위의 위상강화를 위해
노력해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첫 금통위회의록공개에 대해 좋지 않은 평가도 있었던게
사실인데요.

<> 이총재 =일부에서는 금통위원들의 이름이 구체적으로 거명되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50년만에 금통위회의록을 처음으로 공개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충분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앞으로 주요의안에 대해선 금통위원 2-3명정도로 소위원회를 구성하는
방법 등을 통해 금통위원들의 의견을 적극 반영하는 등 금통위가 실질
적인 기능을 하도록 유도하겠습니다.

아울러 금통위 의결안건뿐만 아니라 다른 중요 논의사항도 공개해나갈
계획입니다.


-취임당시 한은의 중립성을 확보하는 문제와 관련해 법개정보다는
정부와 한은이 상호협력해 중앙은행제도의 자율적 운영관행을 정착시켜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한은독립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합니다.

<> 이총재 =한은독립을 위한 법개정이 이뤄져야 한다는데는 동의합니다.

문제는 그만한 여건이 성숙됐느냐는 것이죠.

현재 한은독립에 대한 개념정의는 모두 다릅니다.

특히 정부와 한은의 입장차이는 아주 큽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 혹은 한은이 한은법개정을 추진한다면 생산적인
결과를 얻지 못할게 분명합니다.

따라서 정부나 한은이 아닌 제3의 집단이 오랜 연구끝에 "이런 식으로
한은법을 개정하자"고 의견을 제시한뒤 정부와 한은 국회 등이 이에
동의하는 여건이 마련된다면 한은독립을 위한 법개정은 가능하다고
봅니다.


-우리경제를 두고 말이 많습니다.

일부에서는 총체적 위기라고도 하는데요.

성장도 그렇고 물가도 어려운게 사실입니다.

특히 국제수지적자는 심각한 것으로 보입니다.

올 경제상황을 어떻게 보시는 지요.

<> 이총재 =수출부진 생산활동둔화 재고누적 등 어려운점이 산적한게
사실입니다.

이는 우리경제의 "고비용-저효율구조"로 인해 산업경쟁력이 약화된데서
비롯됐다고 봅니다.

따라서 현 시점에서 단기적인 경기처방보다는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경제체질개선과 경쟁력강화에 촛점을 맞춰 경제를 운용하는게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렇다면 내년 경제는 어떨 것 같습니까.

<> 이총재 =최근의 경기하강추세는 당분간 계속될 전망입니다.

그러나 과거의 경기순환주기와 대내외경제여건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볼 때 내년중에는 완만하게나마 회복국면에 접어들 것으로 전망됩니다.

그렇지만 내년에도 경상수지는 크게 개선되기 힘들 전망이며 물가불안
요인도 잠재해 있는건 사실입니다.


-우리경제의 고질적인 문제인 "고비용-저효율구조"를 야기하는 한 요인
으로 높은 금리수준이 지적되고 있습니다.

특히 지난4월까지 하락세를 보였던 시장금리는 최근 기업들의 단기운전
자금수요가 되살아나면서 다시 오름세를 보이고 있는데요.

<> 이총재 =현재 시장금리가 뛰고 있는 것은 역시 경기하강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봅니다.

기업들의 자금사정이 나빠지다보니까 회사채와 기업어음(CP)발행을
통한 자금조달에 나섰고 그러다보니 단기금리까지 오르는 악순환이
초래됐습니다.

결국은 자금수요공급의 불균형에 따른 것이죠.

그러나 따지고보면 이런 불균형은 공급이 줄어서라기 보다는 수요가
늘어난데 따른 것입니다.

광의의 통화지표가 안정세를 보이고 있는 것에서 알수 있듯이 통화공급은
긴축없이 꾸준한 페이스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이런 기조를 유지할 계획이고요.

따라서 금리급등현상을 진정시키위해선 자금가수요를 줄이는게 합리적
입니다.

경제성장률이 9%대에서 7%대로 하락한 것에 맞춰 기업들도 7%대성장에
맞는 경영방식으로 전환하는게 시급합니다.


-현재 중심통화지표를 변경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어느정도 진척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 이총재 =총통화(M2)의 유용성이 떨어지는건 사실입니다만 국내에는
"M2신화"가 너무 강해 쉽게 변경할 수는 없다고 봅니다.

중심통화지표의 대안으로 MCT(M2+CD+신탁)가 거론되고 있지만 이는
은행이외 금융기관의 단기성부채가 제외돼있어 개념적으로 가장
이상적인 지표라고 볼 수 없는데다 신탁에 대한 지준부과문제도 있어
당장 중심통화지표로 사용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앞으로 1년정도 검증을 거치면 내년중에는 우리 현실에 가장 적합한
중심통화지표가 무엇인지 판단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은행지급준비율을 추가 인하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올해안에 추가인하가 가능하겠습니까.

<> 이총재 =지난4월 은행지급준비율을 평균 2.0%포인트 인하했지만
아직도 선진국수준(0-2.0%)에 비해선 매우 높은 편입니다.

그러나 연5%짜리 총액한도대출실적이 9조여원에 달하고 있어 총액한도
대출잔액이 감소하지 않는한 지준율 추가인하는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총액한도대출이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역할을 맡고 있는 점을
감안할때 단기간 감축은 어려운게 사실입니다.

따라서 지준율 추가인하는 올해안에는 힘들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일부에서는 통화량보다는 금리중심으로 통화관리방식을 변경해야한다고
주장하고 있는데요.

<> 이총재 =통화정책지표로써 금리의 유의성이 높아지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금리중심으로 통화정책을 이행할 만큼 여건이 성숙됐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금리정책의 파급경로가 확보되지 못하고 있는데다 신뢰할만한 금리지표도
찾기 힘들기 때문이죠.

현재로선 금리중심으로 통화관리방식을 변경하기 보다는 통화정책운용대
시장금리의 움직임을 보다 적극적으로 감안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본격적인 금융개방을 앞두고 은행간 합병을 통한 대형화가 시급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은행간 합병의 명분엔 누구나 찬성하는 반면 실현가능성에
대해선 회의론이 많은 실정입니다.

<> 이총재 =국내에서 인위적이나 5대5의 은행간 합병은 절대 불가능
합니다.

정부가 아무리 합병촉진을 위한 제도를 만들어도 당사자 은행들이
의지가 없는한 합병은 요원한 일입니다.

결혼을 위해선 예식장보다는 신랑신부의 의지가 중요한 것과 마찬가지죠.

결국 국내에서는 흡수통합이 불가피합니다.

은행들이 자율경쟁을 지속하다보면 더 이상 못하겠다는 은행이 나오고
그렇게되면 합병은 현실화될 것입니다.


-현행 은행장후보 추천위원회제도가 나름대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만
현직 은행장의 영향력이 너무 강해 개선할 점이 많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개선방안이 있습니까.

<> 이총재 =추천위제도에 대한 아이디어를 낸 것은 바로 저였습니다.

행추위가 은행장선임관행을 개선한건 사실이지만 현직행장들의 입김이
너무 강하다는 등의 문제점도 속속 나타나고 있습니다.

따라서 현직 은행장의 과도한 영향력행사소지를 줄이고 경영성과에
대한 책임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제도가 개선돼야 마땅합니다.

< 정리 = 하영춘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8월 2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