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수지 적자가 심상치 않다.

예상되는 올해 적자는 150억달러로 2년 연속 무역수지 최대 적자
기록이 경신될 것 같다.

한국수출의 젖줄인 반도체의 가격폭락과 엔화 평가절하로 인한 수출상품의
가격경쟁력 상실이 주된 원인이다.

작년에는 윈도95 출시로 컴퓨터 수요가 세계적으로 폭발했고 이에
힘입어 반도체 메이커인 삼성전자는 당기순이익 기준으로 세계 5대기업이
되기도 했다.

그러던 반도체 값이 5분의 1 수준으로 추락했고 그 추세도 장기화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또한 엔화환율도 1년전만 하더라도 달러당 88엔하던 것이 23% 하락해
108엔으로 되어 자동차 철강 등 한국 수출품들이 가격경쟁력을 잃은
것이다.

한국 수출품들이 일본제품들과 얼마나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는가는
최근 파 이코노미스트지의 여론조사에서 극명하게 나타나 있다.

"일본경제의 회복이 자국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느냐"는 설문에
대해 아시아권의 모든 나라들은 최소한 86%이상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조사대상이 된 한국 경영자들은 일본시장에 대한 수출신장에도
불구하고 단지 41%만이 긍정적인 효과가 있고 53%가 부정적인 효과가
있다고 응답했다.

예상되는 무역수지 적자는 GNP의 3.4%로 심각한 수준이긴 하지만 이는
정부의 경제정책의 실패보다는 순환적인 외생적 변수에 의해 초래되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외생적인 변수의 리스크에 대해서는 항상 거시경제적 대응자세를
갖추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통제할수 없는 돌연변수이기 때문에 갑자기 왔다가
홀연히 사라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다음의 두가지 에피소드를 통해서
인지하면서 의연히 대처할 여유도 필요하다.

한국기업이 반도체 사업에 진입하기 위해서 양산체제를 구축하고
있던 1986년초의 일이다.

일본에서 산업정책 국제심포지엄이 있었다.

주제발표자였던 명성 높은 동경대학의 어떤 교수가 한국 반도체업체를
맹렬히 비난하기 시작했다.

반도체 공급이 세계적으로 이미 포화상태인데도 불구하고 새롭게 한국이
대량생산하겠다는 것은 가격덤핑으로 일본 반도체업계를 죽이겠다는 것일
뿐만아니라 한국경제가 자멸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자멸하기는 커녕 반도체 관련 제품 수출에 크게 힘입어 한국경제는
그 이후 2~3년 고속성장을 하였으며 이제 반도체 산업은 독일과 영국을
크게 앞서는 한국 최대 기술집약산업으로 육성되었다.

둘째는 환율의 가변성에 관한 얘기다.

1985년 플라자회담 이후 3년동안에 미달러화의 값어치가 반값으로
떨어졌다.

이와 동시에 이자율과 유가의 하락으로 3저현상이 생겨 우리경제가
크게 덕을 보았다는 사실은 익히 알고 있다.

또한 달러당 120엔대에 있던 일본 엔화가 80엔으로 평가절상되어
제2의 3저현상을 누렸던 것도 불과 2년 전의 일이다.

이렇듯 국제환율이란 우리가 통제할수 없는 요소에 의해서 움직이고
있으며 현재의 엔화 약세현상이 언제 다시 변할지 예측하기 힘들다.

일본의 경상수지 흑자가 올해 들어 큰폭으로 줄어들기 시작하였지만
미국의 국제수지 적자는 1,000억달러 수준에서 줄지 않고 있다.

미국의 대통령선거가 끝나고 0.6%수준밖에 되지 않는 일본 금리가
경기호전으로 상승하기 시작한다면 엔화값 상승은 현실화될 수도 있을
것이다.

외부사정의 변화에서 발생하고 있는 일시적인 무역수지의 적자가
한국수출의 문제라기보다는 보다 본질적인 더 중요한 문제점을 안고있는
것은 사실이다.

즉 지금까지의 가격위주 수출전략에서 탈피하여 앞으로 어떻게 하면
수출 경쟁력을 지속시킬 수 있을까 하는 대안을 찾는 일이다.

그동안 비교적 안정적이고 저렴한 인건비와 대규모 생산시설을 통한
규모의 경제를 바탕으로 한 가격경쟁력은 이미 소실되고 있다.

수출산업의 인건비는 영국수준이고 현대자동차의 울산공장이나
현대중공업의 규모는 세계제일이며 포항제철의 조강능력도 내년부터는
닛폰스틸을 능가하기 때문이다.

국력에 비해 감당하기 쉽지 않은 거대한 규모의 시설을 지어놓고 가격을
비교우위로 해서 세계시장에 침투하였다.

그러나 수출산업의 한계가 왔다.

기본적인 사고의 전환이 필요한 때가 왔다.

왜 아무리 외국인에게 인센티브를 주어도 외국기업들이 국내에 진출하지
않으며 반대로 한국기업들이 말도 통하지 않고 위험이 많은 외국에
기업이민을 가게 되는지에 대한 해결책을 찾는 것이 한국수출문제의
대안과 일치하는 것이다.

일본경제발전을 연구하고 있는 켄트 칼트교수의 정의에 의하면 한국은
정부가 주역이 되는 "발전지향형"국가이다.

이러한 형태의 국가에서는 연고주의적(연고주의적)경향이 조장되어
정치적 논리가 경제를 지배하는 단점을 갖는다.

세계가 무국경화 되면 자본이 국적이 없듯이 기업도 국적이 없게 된다.

임금이 비싸고 자본비용이 바싸면 폴란드이든 아일랜드이든 값싼 곳을
찾아 떠날 수가 있다.

국내에서 탄생했다고 경영하기 힘든 한국에서만 장사하라고 강요할
수 없는 것이다.

경제논리에 따라 임금이 타결되고 자본비용이 결정되고 또한 공장부지가
선정되는 시장메커니즘이 정착되어야 한다.

이제 경제운영도 기업이 주도하는 전략적 자본주의의 장점을 배워야할
필요가 있고 한국경제의 추진력이었던 기업가들의 기업가 정신을 더욱
귀하게 여길 때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8월 1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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