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가 다가온다.

21세기의 가장 큰 문제는 산업의 전이적 현상때문에 경쟁환경이 혼돈상태에
이르러 기업들은 단순한 개혁만으로는 지탱할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경쟁의 의미와 핵심이 어디에 있는지에 대해서는 너그러운
것 같다.

자본-토지-임금으로 해결하던 우리의 가격 경쟁력은 이미 상실한지 오래다.

이자는 세계 최고수준이고, 그나마 자금부족으로 기업은 허덕이고 있다.

토지는 우리의 GNP로 남한땅의 6.7분의1밖에 못 산다고 한다.

반면 일본은 자기 땅의 3.6분의1, 미국은 0.6분의1을 살 수 있다고 한다.

임금은 우리 경쟁국과 상대임금으로 비교할 때 중국은 우리의 20분의1,
말레이시아와 태국은 5분의1, 인도네시아는 9분의1 수준이라고 한다.

이러한 경쟁환경에서 21세기에 생존하기 위해서는 한국인 특유의 정신력을
발휘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G7의 꿈은 고사하고 제2의 멕시코로 전락할지도 모른다.

이제 우리는 직업에 대한 "프로 정신"만이 우리의 살길임을 재인식해야
한다.

우리 주변생활에서 가장 처절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예로 든다면
속된 예가 될는지 모르지만 노름을 들수 있다.

눈 앞에 놓인 돈을 보고 따먹기 하는 노름판의 한순간은 기업의 투자와
이윤이라는 느긋한 경쟁보다 더 절박하고 리얼한 것은 사실이다.

노름판에서의 승리는 새벽에 가서야 판가름난다.

초저녁의 승자는 새벽까지 이어지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새벽에 자리를 뜰때 판돈을 휩쓴 사람이 결국 승자인 것이다.

이 승자를 가리켜 "끗발"이 있는 사람이라고 한다.

기업에서도 이러한 끗발이 있어야 한다.

우리는 마치 초저녁에 돈을 따고 기뻐하는 처지는 아닌지 걱정스럽다.

이제 기업에서도 끗발이 경쟁의 결정 요인이란 것을 인식해야 하겠다.

그렇다면 이 끗발이란 것은 무엇인가.

처음은 비록 미약하더라도 도중에 꺾이지 않고 끝내는 이겨내고야 마는
그 끈기가 바로 끗발이 아닐까.

끈기는 정신력만으로 되는 것도 아니고 체력만으로 생기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기의 영역으로서 인간이 달인의 경지에 도달할 때에 생기는 특이한
현상인 것이다.

이것을 서양에서는 "프로 정신"이라고 부른다.

프로는 자기의 일에 기를 써서 책임을 다하기 때문에 타인으로부터
승복을 받으며 이론의 여지가 없기에 진정한 승리자인 것이다.

독일의 마이스터나 우리의 장인정신은 다름아닌 바로 프로정신이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에서는 장인정신이 사라졌다.

선비사상 속에서 사농공상식의 서열차별은 공이나 상을 가장 무식한 자가
해야할 직업으로 매도했고 그결과 장인은 사라져야만 했다.

세계적 발명품이던 한지(창호지)는 산업화를 이루지 못하고 가장 영세한
가내공업으로 명맥만 유지한 탓에 서양의 종이에 밀려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고려 청자와 조선 백자는 일본이 더욱 보호육성하여 우리보다 멀찌감치
앞서버렸다.

근래에 와서 조차도 우리가 우리 것을 지키지 못하는 형편이다.

김치도 세계시장에서 "기무치"로 일본이 종주국인양 되고 있다.

이대로 21세기를 맞아서는 안된다.

창조를 천시한 조선 500년의 결과로 36년간 노예생활을 한 것으로 족하다.

아직까지도 우리 기업에 프로정신이 다져지지 않으면 21세기에 우리는
또 다시 슬픔을 맛보아야 할지도 모른다.

"프로"란 무엇인가.

첫째 프로는 특별한 사람이 아니다.

프로는 자기 관리를 철저히 하는 사람이다.

유명한 프로 축구선수였던 차범근씨는 프로선수 생활동안 매일의 훈련과
시합을 위해 일찍 귀가하고 잠을 충분히 자며 술이나 담배 등 몸에 해로운
것들은 입에 댈수 없었다고 한다.

즉 프로는 노동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자기와의 싸움에서 이겨야 하는
것이다.

둘째 프로는 한계상황을 극복할 때 탄생한다.

누구나 할수 있는 정도의 일을 한다면 프로가 될수 없다.

오리온전기 제조1과 평사원인 최유권씨는 94년 한햇동안 1,264건의 제안을
하여 한국능률협회 제안대상을 받았는데 그중 발명에 가까운 것이 90%가
넘었다고 한다.

그의 약력은 진주기계공고를 졸업한 것이 전부였다.

이러한 사람이 어디 한둘에 그칠 것인가.

다른 기업에도 많이 있다고 한다.

인적자원을 귀하게 아는 풍토가 아쉽다.

베토벤은 심포니 제5번을 발표한후 귀가 먹었으나 그 이후에도 대작을
발표했고, 호킹스박사는 불구의 총집합이 된 몸체로 세계 최고의 물리학자가
되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셋째 프로는 모방보다 창조를 해야 한다.

21세기 경쟁의 핵심은 기술개발에 좌우된다.

즉 창조만이 경쟁에서 이기는 전략이다.

창조는 자유로운 풍토에서 나온다고 한다.

이제 정부는 기업의 규제를 풀고 기업은 권위주의적 사고에서 벗어나
X세대를 수용하고 전종사원의 자유의사를 존중해서 상사와 부하간에 미움이
사라지고 포용과 사랑이 감싸는 창조의 물결이 온나라 안에 가득차게 해야
한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사람도 중요하지만 프로에게도 금메달 못지않은
예우를 해주어야 한다.

쿠바가 금메달을 많이 땄다고 누구도 그 나라를 선진국으로 생각지 않으며
오히려 그 나라의 21세기를 걱정하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실속인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8월 1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