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와 번영으로 세계를 앞서가는 선진국가, 정신적 가치와 도덕성이
존중되는 문화국가, 세계의 평화와 번영에 기여하는 통일국가...

이것은 우리 모두의 꿈이고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김영삼대통령이 광복 51주년을 경축하는 기념식에서 우리민족 최우선의
과제이며 미완의 광복을 진정한 광복으로 만들기 위해 우리모두가 지향해야
할 목표로 지목한 내용이다.

해마다 되풀이 되어온 광복절 경축식이 벌써 51번째이고 그때마다 대통령은
경축사를 통해 우리민족이 지향해야할 목표를 제시해왔다.

약간의 변화는 있어왔지만 언제나 빠짐없이 등장해왔던 것은 통일에 대한
바램과 이를 실현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 즉 대북제의였다.

대통령의 축사는 그래서 늘 내외의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이번에도 그같은
관행에는 예외가 없었다.

평화와 협력을 내세운 대통령의 제의가 눈이 번쩍 떠질만한 새로운
구체적인 내용을 담고 있지는 않지만 정부의 대북정책기조를 다시 확인하는
것 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평가할 수 있는 것은 바로 경축사가 갖는 이런
배경 때문이다.

반세기를 되풀이 되어온 대북제의와 그 의미의 분석.

꿈에도 소원은 통일인 우리민족에게는 결코 헛된 작업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것이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고 하더라도 무한한 시간이 걸린다고 할지라도
끊임없이 되풀이해야 할 민족의 당위라는 점을 부정하는 한국인은 아마 없을
것이다.

대통령의 축사는 그런 점에서 통일이라는 과제의 다른 당사자인 북한에게
할 말을 한 셈이다.

그러나 과연 그것만으로 충분한가.

미완의 광복을 진정한 광복으로 만들 수 있는 통일을 위해 할일을 다했다고
할수 있을 것인가.

대답은 부정적이다.

집단적 이기주의가 판을 치고 구석구석에 부패의 사슬구조가 뿌리내리고
있는 이 사회.

손바닥만한 땅에서 TK니 PK니 하며 지역분할정치가 이루어지고 있는
이 사회를 그대로 방치하고서도 통일을 이룰 수 있을 것인가.

핵심권력의 편에 서면 능력의 유무에 관계없이 충성심만으로도 보상을
받는 사회.

나라의 중책을 맡게 된 것을 기회로 삼아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이 정치적
판단에 따라 사면 복권되는 사회.

이런 사회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통일을 이룰 수 있을 것인가.

어느날 남과 북이 합치는 외피만의 통일은 이룰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과연 그 사회가 온전할 것인가.

지역분할에 이념의 분할까지 겹쳐 상상할 수 없는 혼란이 올 것은
불문가지의 일이다.

혼란을 방지하는 길은 간단하다.

우리사회의 새로운 틀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개발독재시대에 뒤돌아 볼 틈도없이 오로지 경제적 발전만을 지상과제로
삼으며 달려온 이 사회가 안고 있는 갖가지 부정적인 요소들을 하나 하나
바꾸어 나가는 작업이 필요하다.

이같은 작업은 시간도 많이 걸리고 어려운 일이다.

사회 각구성원이 거듭난다는 각오를 갖지 않는다면 성취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은 사회의 그 어느 구성원보다도 혜택을
많이 받아온 특권층, 권력을 잡고 있는 사람들의 솔선수범이다.

결과가 좋다면 과정쯤이야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생각.

자신과 집단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그럴듯한 이유를 내세워 공평성을
무너뜨리는 결정을 내리는 정부당국자의 생각 등등 헤아릴수 없이 많은
부정적 요소들을 제거하는데 이들이 앞장서야 한다.

그런 점에서 대통령의 축사중 민주와 번영으로 세계를 앞서가는 선진국가와
정신적 가치와 도덕성이 존중되는 문화국가라는 대목에 주목하고 싶다.

공자님 말씀같은 단어들로 들릴지도 모르지만 필자에게는 대북제의부분
보다도 이 대목이 더 중요하다고 느껴진다.

세계를 앞서가는 선진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상식이 통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는 것일게다.

정신적 가치와 도덕성이 존중되는 사회는 바로 법과 질서가 제역할을
다하고 법이 법다운 사회가 되어야한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여기서는 지역분할이 설 땅을 잃을 것이고 집단적 이기주의는 전체의
이익이라는 대명제앞에 무릅을 꿇을 것이다.

법치사회라고 할수도 있고 상식사회라고도 할수 있다.

명칭은 어떠하든 법이 바로서고 사회구성원 각자가 제 할일을 성실히
수행할 때에야 진정한 통일의 길이 가까워질 것이다.

그때에야 비로소 우리는 일제의 잔제를 청산하자는 목소리를 높이지
않아도 되고 반세기전 우리의 조상들이 눈물로 맞이했던 광복을 진정한
광복으로 이어갈 수 있지 않을까.

(한국경제신문 1996년 8월 1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