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에서 무대란 배경에 불과하다.

배우들이 울고 웃고 소리치고 구르는 작은 공간.

제아무리 기괴한 설치물도 배우들이 받는 스포트라이트의 그늘에선 말없는
배경화면으로 머물 뿐이다.

그러나 이 배경을 당당히 "세계"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그리고 그는 매일 이 세계를 창조해낸다.

연극무대미술가 이영세씨(31).

그는 1년에 10편 가까운 연극무대를 만들어내는 대학로 최고의 다작가다.

다시말해 한국 최다작가다.

"북어대가리" "불의 가면" "살아있는 이중생각하" "관객모독" 등 들으면
알만한 흥행대작들의 무대가 그의 손을 거쳐 탄생했다.

그밖에도 그가 지금껏 무대미술을 맡은 연극수가 60여편.

이벤트 방송프로그램 대형극장까지 합하면 늘 일에 싸여 살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학졸업후 본격적인 연극판에 뛰어든지 8년째.

길다면 길다고 하겠지만 10년을 활동해야 신인상을 받는 국내 연극계에서
이렇게 짧은 기간에 정상의 위치에 선 비결이 뭘까.

"글쎄요.

전 일을 하는 동안은 그야말로 목숨을 걸고 해요.

일단 오퍼가 들어오고 대본을 받게 되면 완전히 몰두하죠.

이거다하는 생각이 들때까지 끊임없이 생각하고 고치고.

제가 맡은 일은 무대디자인이라 할 수 있지만 세트에 색깔도 직접 입히고
마지막 제작과정까지 세심하게 신경을 씁니다"

아무렇게나 기른 머리, 깎지 않아 듬성듬성 나있는 턱수염등 털털한
외양과 달리 일을 얘기하는 그의 모습에선 최선을 다하는 프로의 성실함이
배어나온다.

그가 어린시절부터 연극에 관심을 가졌던 것은 아니다.

대학(연세대 독문과)에 입학한 85년, 연극을 좋아하던 과친구의 권유로
연세극예술연구회에 들어갔다.

대학 연극서클이 다 그렇듯 그도 연출 조명 단역배우까지 여러 일을
거쳤다.

그중에서 굳이 무대미술을 선택하게 된 이유가 뭐냐는 질문에 그는 간단히
대답한다.

"제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이더군요"

대학시절 여러 대학(주로 여대였다고 한다)의 연극무대를 손보며
아마추어로서 경력을 쌓은 그는 졸업후 동숭아트센터에 8개월간 몸담으면서
첫 작품 "성난 얼굴로 돌아보라"의 무대를 만들었다.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 취직이었어요.

동숭아트센터가 영화관으로 바뀌면서 일자리를 잃었죠"

하지만 이영세의 이름을 아는 몇몇 사람들이 그를 찾았고 한작품 한작품이
좋은 평가를 받으면서 지금까지 프리랜서로서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연극해 보자고 나를 꼬셨던 그 친구는 지금 컴퓨터회사에 다녀요"라고
웃으며 그는 자신의 연극인생출발기를 맺는다.

자기일에 만족하는 이씨지만 결코 일이 쉬운 것만은 아니다.

"무대미술은 육체와 정신을 함께 혹사시키는 3D중의 3D업종"이라고
잘라 말한다.

"이건 완전히 새로운,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종이에 불과한 대본을 눈으로 볼수 있는 장면으로 구체화시키는 거지요.

이미지를 떠올리고 스케치하고 도면을 그리고 일일이 망치를 두들겨
제작하고.

밤샘작업을 할때는 정말 죽고 싶을 정도로 힘들때가 많습니다"

그렇다면 그같은 일의 고됨에 대한 보상은 무얼까.

최소한 돈은 아니다.

소극장 무대를 한달여 걸려 꾸미고 그가 받는 돈은 150만원정도.

결코 큰돈을 번다고 할 수 없다.

"일자체가 보상이겠지요.

힘들다고는 하지만 재미도 최고예요.

내손으로 하나의 작은 세계를 만들어 낸다는 것은 굉장한 희열을 가져다
줍니다"

사람좋고 털털한 그이지만 일에 있어서는 나름대로 엄격한 기준이 있다.

같은 타입의 무대는 다시 만들지 않는다.

실험정신이 강한 것, 자신에게 도전이 되는 작품을 선택한다.

한자리에 머무르지 않고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가려는 그의 태도에서
진정한 예술인의 정신이 엿보인다.

< 글 권수경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8월 1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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