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상 2~3년에 한번씩 중국을 방문하게 된다.

몇년 터울로 만나게 되는 중국은 그 경제적, 사회적 변화가 피부에
와닿을 만큼 선명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내게는 그곳 사람들의 얼굴 변화가 가장 두드러지게
다가온다.

누군가 우스갯말로 얼굴을 "올꼴", 즉 그 사람의 얼이 그대로 드러난
모양 "꼴"이라고 했다.

그들의 얼굴에선 점차 중국인으로서의 자부심 대신에 엄청난 혼란과
잔뜩 물오른 돈냄새가 물신 풍긴다.

그들에게서 몇십년 전 우리들의 얼굴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한 기분을
지워버릴 수가 없었던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그들은 예전의 우리처럼 돈이 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끝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 것인가?

우리 기성세대들은 "요즘아이들은 예전 우리와는 달리 왜 저렇게 목적
의식도 없고, 끈기도 없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말을 자주 읖조린다.

그러나 대학에서 아이들과 가깝게 지내다보니 그건 너무도 당연한
귀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사오십대만 해도 자기 자신이 무언가 이룩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생각에 현실적인 성공을 인생의 최우선 목표로 설정해 놓고
앞뒤를 돌아볼 겨를 없이 달려온 사람들이다.

그러나 지금 젊은 세대들은 다르다.

그들은 모든 것이 일정수준이상 갖추어진 환경에서 자라났고, 다양해진
일자리는 맘만 먹으면 그들에게 당장의 일용할 양식은 해결해 줄 수 있다.

그들은 한 번뿐인 인생을 그렇게 고단하게 살고 싶어하지 않는다.

대체 무엇때문에 그렇게 살아야 된는가?

그들은 묻는다.

왜 공부를 해야 하며, 대학에 가야 하는지, 왜 돈을 벌어야 되고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

그들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인생을 맘껏 즐기길 원한다.

괴롭고 힘든 성공보다는 즐겁고 안락한 소시민의 길을 택하는 것이다.

어쩌면 그들이 옳을 지도 모른다.

그 자리에 인생에 대한 깊은 성찰과 삶에 대한 진지한 의문만 존재
한다면.

아무 것도 진정한 고통과 노력 없이 이루어지는 것은 없고, 또 설사
그런 과정 없이 운 좋게 주어지는 것들은 너무나 허무하게 스러지고
만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

그러나 불행히도 자신의 가치와 존재에 대한 고민도, 도달해야 할
인생의 목표도 없기 때문에 그들의 일상은 혼란과 불안, 방황의 연속이다.

그들은 허무하다.

도대체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가?

무엇이 진리이고,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되는가?

결국 우리는 지금 뿌린대로 거두고 있는 것이다.

우리 부모들이, 우리 사회가 언제 그들에게 그러한 사고를 할 수 있는
겨자씨만한 토대라고 제공한 적이 있는가?

그 업보는 기성세대 자신들에게도 여지없이 되돌아왔다.

요즘 우리나라 사람들은 남녀노소, 계층을 불문하고 모두가 "악에
받쳐" 사는 것 같다.

그들에게 세상은 불평등하고, 모순과 부조리로 가득찬 고해의 바다이다.

그들의 공통점은 자신의 불행이나 현재의 부족한 상황을 모두가
남의 탓, 세상 탓, 지도자 탓으로 돌린다는 것이다.

아니면 회의주의자나 허무론자가 되기도 하고, 이도저도 아니면 불안한
자신의 심경을 때없는 신비주의나 무속인들의 예언에 기대보기도 한다.

이 모두는 가치관의 부재 때문이다.

몇 십년 동안 경제적 부흥을 위해 개인이나 국가나 할 것 없이 정신
없이 달려온 끝에 빚어진 일종의 정신적인 공황상태인 것이다.

지금, 우리에겐 근본에 대한 깊은 성찰이 필요할 때다.

인생의 진정한 가치가 무엇인지, 왜 우리가 살아 있고, 어떻게 살아야
되는지.

그리고 왜 일을 해야 하며, 그 일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말이다.

기업가든 정치인이든 종교인이든 식당주인이든 자신이 왜 이 길을
선택했으며, 자신의 선택이 옳았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한번쯤 자문해 볼 일이다.

그렇다면 지금 자신의 일이 얼마나 소중하고 또 행복한 일인지도
깨닫게 될 것이다.

그것이 종교적 수행이든 명상이든 내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
그리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많은 사람들이 알고 간다면 세상이 이토록
어수선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교육 프로그램이 마련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각 종교단체에서도 포교차원을 넘어서 우리 일상인들이 삶의 의미를
조용히 성찰해볼 수 있는 장을 제공해 주길 바란다.

나아가 기업에서도 이러한 명상 시간을 정기적으로 마련한다면 생산성
향상에 크게 도움이 될 것 같다.

목적이 뚜렷하고 좌표가 뚜렷한 배는 항로를 이탈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항해는 불안하지도 않고 어지간한 폭풍우나 암초에도
쉽사리 좌초되지 않는다.

아무리 바쁘더라도 하루에 한번즘, 아니 일주일에 한번이라도 자기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는 여유를 가져보는 것은 어떻까.

(한국경제신문 1996년 8월 1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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