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11시.

짧은 머리엔 무스를 바르고 반팔 면티를 아무렇게나 입고 일하고 있던
박호민과장은 곤란에 빠졌다.

결재를 받으러 본사에 갈 일이 생겼는데 웃옷이 마땅치 않았던 것이다.

때마침 옷걸이에 김대리의 헐렁한 검은색 재킷이 눈에 띄었다.

"됐다".

"조대리 오후에 갔다줄께"

"어. 안돼요 과장님. 저도 지금 충무로 사식집에 나가봐야 돼요"

"그래? 그럼 충무로에서 줄께. 어차피 나도 갈 일이 있으니까"

현대백화점 맞은 편에 위치한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상가내 금강개발산업
본사 3층의 한 방에서는 이런 내용의 대화가 오가고 있었다.

금강개발산업 영업촉진팀 디자인파트 사무실이다.

이곳에서는 부서장을 비롯해 아무도 정장을 입고 근무하는 사람이 없다.

"입사해 얼마 안돼서는 작업하다가 넥타이도 여러장 잘라 먹었어요.

이젠 꼭 필요한 경우외에 정장을 입는 사람은 거의 없지요"(김동욱대리)

출퇴근 시간이 확정적이지 않은 것도 이 팀의 특징.

대개 8시30분정도에는 출근을 하지만 특히 퇴근시간은 대중이 없다.

일이 끝나면 아무때나 집에 간다.

그래서 다른 부서의 눈총을 사기도 한다.

그러나 대개는 본래 근무시간을 초과한다.

주어진 일이 그날그날 처리되지 않으면 바로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다.

이들의 임무는 주로 압구정동 무역센터 반포 등 세군데의 현대백화점이
아파트 단지 내에 뿌리는 전단을 디자인하는 일.

"언젠가 전단을 운반하던 차가 뒤집히는 바람에 1주일간 전단이 뿌려지지
못한 적이 있어요.

당시 매출이 반으로 뚝 떨어지더라구요"(조병태대리)

그래서 회사에서는 1달에 4억원이나 들어가는 전단 제작작업에 돈을
아끼지 않는다.

그밖에도 백화점 외벽의 현수막이나 각종 실내장식물 버스광고 등 이들의
손을 필요로 하는 백화점 사업은 실로 무궁무진하다.

얼마전까지는 방송광고 기획까지 맡아 처리했다.

이들의 작품은 애니메이션 기법을 이용한 동화적인 화면과 짧고 간결한
멘트로 큰 인기를 끌었다.

93년에는 히로시마 세계 애니메이션대회 비경쟁부문에 초청받아 작품을
출품했을 정도다.

"우리팀 직원들은 대부분 개성이 강합니다.

고집도 세구요. 그렇지만 무질서한건 아니예요"(임택근씨)

서로의 강한 개성이 묘하게 맞물려 조화를 이룬다고.

계절마다 2박3일 일정으로 근교로 전체 팀원이 여행을 떠나 팀워크를
다지기도 한다.

정신없이 작업에 몰두하는 팀원 한사람 한사람의 손끝에는 매출의 절반이
자기 손에 달려 있다는 강한 자부심과 애착이 배어 있었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8월 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