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반이 장덕휘의 고향으로 내려갈 때 데리고 간 사람들은 늙은
하인 세 사람과 시동 두명이었다.

본처인 하금계는 말할 것도 없고 첩이면서 시녀인 향릉이나 다른
시녀들은 일체 데리고 가지 않았다.

설반의 생각에 여자들은 구하려고 마음만 먹으면 어딜 가나 구할
수 있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여자들을 데리고 가면 마음대로 혼자 떠돌아다니는 데
방해가 되고, 또 어떤 잡놈이 건드리지 않나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니었다.

설반이 아끼는 향릉과 본처인 하금계는 대부인과 어머니 설부인이
계시는 영국부에 맡겨두는 것이 설반으로서도 훨씬 마음 놓이는
편이었다.

설반이 떠나고 난 후 설부인이 집안의 사람들을 점검해보니 남자
하인이 세 명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원래 하녀들도 많지 않았던 터라 집안은 썰렁한 분위기마저
감돌았다.

설반이 데리고 간 하인들 두 명은 영국부에 두고 갔는데,
설부인이 그 아내들을 본채로 들어와 살도록 하였다.

안그래도 바람기가 있기로 소문이 나있는 여자들인데 하인들이
기거하는 바깥채에 과부들처럼 기거한다면 무슨 불미스러운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설부인이 설반의 애첩 향릉을 간수하는 것이
문제였다.

향릉은 빼어난 학식을 지닌 선비 진사은의 딸로 태어나 자라다가
어릴적에 인신매매단에게 납치되어 온갖 수모를 겪으며 지내는 중에
설반의 눈에 띄어 그의 애첩이 되기에 이른 것이었다.

그렇게 제대로 공부할 기회도 갖지 못한 향릉이었지만 핏줄의
영향은 어쩔 수 없는지 아름다운 용모뿐 아니라 지적인 매력까지
갖추고 있어 녕국부와 영국부의 엉큼한 남자들이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판국이었다.

설부인이 향릉을 불러 지시하였다.

"네 방을 말끔하게 치워 잠궈놓고 내 방으로 와서 지내도록
하여라"

옆에서 어머니의 말을 듣고 있던 보채가 나서서 말했다.

"어머님 방에는 여러 사람들이 있으니 향릉 언니가 불편할 거예요.

그러니 향릉 언니는 대관원에 있는 나의 처소에서 지내도록
해주세요.

나도 혼자 있으니 적적해서 말동무가 필요하니까요"

보채의 처소라면 형무원이 아닌가.

대관원에는 보옥을 제외하고는 모두 여자들만 기거하므로 향릉이
영국부에 있는 것보다 대관원 깊숙한 곳에 들어가 있는 것이 더
나을 것도 같았다.

결국 설부인의 허락을 받아 보채가 향릉을 자기 처소로 데리고 갔다.

향릉은 그 이름 그대로 어디를 가든지 독특한 향기를 피우는 듯했다.

보채는 향릉과 함께 잠자리에 누워서도 향릉의 향기에 취해 밤이
깊어가는 줄 몰랐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8월 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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