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 불볕 더위도 잊은채 우리 모두는 애틀랜타의 올림픽 열기에 가슴을
태우고 있었다.

매일밤 TV를 보면서 금메달이냐, 은메달이냐를 되뇌이며 우리선수들이
힘껏 싸워 주기를 갈망했던 것이다.

그래서 느닷없이 TV화면에서 나타난 <특보>도 틀림없이 메달 소식이려니
하면서 기대에 부풀었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천재지변이라니...

갑자기 쏟아진 빗물에 산사태가 나고 군부대 막사가 무너지면서 한창
젊음을 꽃피울 수많은 장병들이 목숨을 잃었다니.

너무나 놀랍고 어처구니 없는 소식에 잠시 넋을 잃고 말았다.

또 하루아침에 가족을 잃고 재산을 잃어버린채 실의에 빠져있는 많은
이재민들, 그들의 아픔을 직접 체험하지 않고는 그 "깊은 슬픔"을 논할수
조차 없으리라.

하루 빨리 그들이 아픔을 딛고 일어설수 있도록 정부나 관계기관은 물론
온 국민들이 그들을 돕는데 앞장서주길 바랄뿐이다.

다행히 우리들은 그들의 아픔에 관심을 쏟고 온정을 베풀고 있다.

돌이켜보면 천재지변이든 아니든, 대형사고를 한 두번 겪는 것이 아니다.

그때마다 우리는 다시 일어섰다.

더구나 애틀랜타 올림픽이 막바지에 이르면서 우리선수들이 너무나
잘 싸우고 있다는 희소식이 연일 들려오고 있다.

이렇듯 우리는 모든 일을 슬기와 인내로써 잘 참고 견대어 가고 있다.

하지만 우리의 슬기와 인내로도 해결할 수 없는 한가지 소식이 우리의
가슴을 섬뜩하게 하고 있다.

지구촌의 축제와 우리나라가 재난에 빠져 슬픔에 젖어있는 사이 슬그머니
고개를 들고 일어난 일본의 신사참배, 지난 29일 일본 총리 하시모토
류타로가 야스쿠니신사에 참배 했다는 소식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죽이고 빼앗고 짓밟았던 일제 침략을 또다시 상기하지 않을 수 없다.

어쩌면 전후 50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전쟁의 망령이 되살아나고 있는 건
아닐지, 이미 알려져 있지만 야스쿠니 신사는 도쿠가와 이에야스로부터
태평양전쟁에 이르기까지 전몰자 약 240만명의 위패가 있는 곳이다.

문제는 전몰자중 침략전쟁의 책임을 물어 처형당한 소위 A급 전범자들이
그곳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 총리가 그런 소지를 모를리 없는데도 그곳을 찾아서 방명록에
당당하게 내무총리 대신이라고 서명한 것은 참배 자체가 야스쿠니의
상징성과 연관됨을 입증하는 일이다.

그는 자국의 국회에서도 태평양전쟁의 침략적 성격 규정에 동의하지 않고,
결론적으로 전쟁의 목적과 성격을 구분함으로서 그들의 두 얼궐을 여실히
나타내고 있다.

특히 8.15를 기해 총리는 물론 일본 각료들까지 야스쿠니 신사참배를
잇따라 서두르고 있다는 사실에 우리는 유념해야 한다.

그들은 지금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 것일가.

아마도 그들은 아직도 아시아 대공영권에 대한 헛된 꿈을 꾸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들이 이 꿈을 버리지 못하고 있음을 우리는 자각해야 하며, 또 다시
전쟁의 망령이 되살아나지 않도록 이들에 대한 정부의 단호한 척결이
뒤따르지 않으면 안될 것 같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8월 3일자).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