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만난사람 = 박성희 문화부장 ]

케이블TV 조기정착의 주역으로 주목받아온 김재기 전 한국케이블TV
협회장의 돌연한 사임이 각계의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임기를 8개월이나 남겨둔데다 케이블TV 시청가구 100만돌파로 인기
절정인 시점에서 회장직을 내놓은 것을 놓고 영전과 외압설이 끊이지
않는 김회장을 서울적선동 한국생산성본부건물 6층 한국씨름연맹회장실
에서 만났다.

영전설과 외압설을 모두 부인한 김회장은 지도층인사일수록 자리에
연연하는 풍토속에서 스스로 물러나는 사람도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며
앞으로는 함께 사는 사회를 위해 중산층이상을 시민운동에 참여시키는데
힘쓰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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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케이블TV협회장 사임 후 기업쪽으로 자리를 옮기셨다는 얘기가
있었는데요.

<> 김회장 =삼미그룹에서 캐나다주정부에 제출하는 서류에 필요하다고
해 이름을 빌려준 것이지 실제적으로 관여하는 바는 전혀 없습니다.

전문경영자로 은행장까지 지낸 만큼 업계에서는 오라는 데가 많습니다.

하지만 기업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래도 한정돼 있지 않겠습니까.


-임기도 8개월이나 남아있고 방송계안팎에서 역량을 인정받는 가운데
갑자기 사퇴한 것을 놓고 정계진출내지 더 큰일을 하기 위한 포석이라는
시각이 많습니다.

<> 김회장 =6개월전부터 고민한 끝에 내린 결정입니다.

초기에는 방송인이 아닌 경영인이 회장을 맡았다고 안팎에서 반발이
있었지만 적극적으로 일을 추진한 결과 인정을 받았습니다.

몇달전 사의를 표명했을 때 정부와 회원들 모두 펄쩍 뛰면서
만류하더군요.

사실 케이블TV 초기에는 추진력과 결단력, 행정력을 갖춘 전문경영인을
필요로 했습니다.

제가 맡아서 홍보와 조직정비, 정부와의 관계구축 등은 어느 정도
기반을 잡아 놓았다고 생각합니다.

케이블TV에 대한 국민의 인지도가 90%에 이르렀고 시청가구수가
110만이나 되는데다 위성방송도 케이블을 통해 나가고 있죠.

이 시점이 나를 돌아볼 때라고 생각했습니다.

사회의 지도층인사들은 명분을 중시하고 철학을 가져야 합니다.

아쉬운 감이 없지 않지만 결단을 내렸지요.

직장을 그만두는 경우가 조직과 뜻이 안맞거나 임기가 다 돼서,
혹은 이루려고 했던 바를 달성해서 등 3가지라고 한다면 마지막에
해당됩니다.


-후임회장을 직접 추천하셨다고 하던데.

<> 김회장 =위성방송 출범, 민방의 추가허용 등 본격적인 방송경쟁
시대에 들어섰고 케이블TV망으로 각종 부가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된
만큼 이제부터는 전문적 지식을 갖춘 사람이 이끌어가는 것이 좋다고
봅니다.

행정력 정치력도 있어야 하고.

그런 점에서 조경목 회장이 적임자라고 생각, 적극 추천했습니다.


-지난 총선때 출마한다는 소문이 있었는데요.

지금도 정계진출설이 계속 나돌고 있고요.

본인의 뜻은 어떻습니까.

<> 김회장 =사실 고향에서는 출마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실제로 정당에서 요청이 들어오기도 했구요.

그러나 국회의원이 된다고 뜻을 펼칠 수 있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그보다 보람있는 일이 얼마든지 있다고 봅니다.


-사랑의 각막 은행장과 한국씨름연맹 회장을 맡고 계시죠.

그간 양쪽에서 모두 상당한 성과를 이뤄냈다는 평가입니다.

<> 김회장 =사랑의 각막 은행장을 맡고 나서 외국처럼 신분증에
각막기증스티커를 붙이는 제도를 추진, 7월1일부터 실시하게 됐습니다.

전국 3,764개 동사무소와 24개 운전시험장에 비치해 각막기증 약속을
하면 주민등록증이나 운전면허증에 붙여줍니다.

씨름연맹에 처음 와보니 경리부장까지 씨름인 출신이더군요.

제가 맡은 뒤 경기쪽은 씨름인, 행정적인 일은 일반인이 하도록 하고
사무를 완전 전산화했습니다.


-두 가지외에 시민운동에도 상당한 관심을 쏟고 계시더군요.

<> 김회장 =사회가 다원화됨에 따라 여러 계층에서 다양한 요구가
분출되고 있습니다.

이런 요구들은 정부 혼자 해결할 수 없습니다.

결국 선진국처럼 시민들이 나서야 해요.

우리나라에서도 이뤄지고 있지만 현재 시민운동의 주도층은 대부분
과거 재야운동을 했던 사람들입니다.

그 결과 대부분의 시민단체들이 재정적으로 어렵고 조직운영도
체계적이지 못해요.

시민운동을 활성화시키려면 저처럼 행정경험이 있는 기득권층이
참여해야 합니다.

시민운동기금을 창설, 전국 66군데 시민운동조직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지자제 선거때 참여연대를 지원했고 총선때 공명선거대책협의회에
1억원을 냈습니다.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의 공동대표로서의 활동도 전해 주시죠.

<> 김회장 =북한에 식량을 보내자는 것이 취지입니다.

재야에서 활동하던 분들이 주축이 돼있는데 저같은 중산층이 들어가야
시민들에게 안도감을 줄 수 있어요.

이처럼 시민단체와 기득권층 다시말해 부유층을 연결시키는데
앞장서고자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시민운동하는 사람들은 돈이 없고 가진사람들은
돈을 가치있게 사용하는 방법을 잘모르는 것같습니다.

아무리 많이 가진 사람도 남을 위해 쓸 때는 자기몫을 내놓는 것인데
우리사회에서는 돈이 넘쳐서 그런다고 가볍게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부자는 무조건 부정한 짓을 했다는 식으로 매도하고.

따라서 시민운동단체를 위한 모금을 위해 부유층을 설득하는 작업이
쉽지 않을것 같습니다.

<> 김회장 =지금처럼 부자들이 사회의 시선때문에 기부하는 것을
회피하는 분위기에서는 어렵습니다.

돈을 많이 벌어 세금을 많이 내는 사람들을 존중하는 사회풍토가
조성돼야죠.

재야.시민단체들에게는 부자를 인정하도록, 부유층에게는 부를
사회에 가치있게 재환원할 수 있도록 만드는데 사회지도층인사들이
나서야 합니다.

함께 사는 사회를 위해 모두 힘을 합쳐야지요.

제가 뛰어다니는 것도 그때문이에요.

항상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은 국회의장이나 국무총리, 장관 등을
지낸 분들이 시민운동에 관심이 적다는 겁니다.

지도층인사들이 사회적으로 영향력있는 자리에만 연연하지 말고
시민운동에 참여하면 놀라운 발전이 있을 것입니다.


-구체적인 모금방법은 무엇입니까.

로타리클럽 활동에도 적극적인 걸로 아는데 어느 정도 도움이 됩니까.

<> 김회장 =제가 속해 있는 "새신라로타리"의 회원은 200명이 넘습니다.

주회때마다 한사람당 1~2만원만 내도 100만~200만원씩 모아집니다.


-언제부터 시민운동이나 사회봉사활동에 관심을 두셨나요.

다른 사람들이 무심한 부문에 신경쓰게 된 계기는 무엇입니까.

<> 김회장 =은행장 시절부터 환경과 장애자문제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주택은행장으로 있을 때 전직원의 명함과 봉투, 회보 등을 재생지로
만들도록 했습니다.

비용은 오히려 더드는 감이 있었지만 재활용에 앞장선다는 상징적인
의미도 있었고 이런 일은 큰 조직이 나서서 해야 한다는 소신을
가지고 밀어붙였습니다.


-요즘 리엔지니어링 등 경영혁신의 한 요소로 중간관리자의 역할을
강조하지만 조직의 변화는 역시 최고경영자의 의지에 달려있는 것같습니다.

<> 김회장 =은행장 시절 환경문제와 장애자문제에 뛰어들었을 때
금융계와 언론계 모두 돈키호테처럼 취급하더군요.

그러나 지금 상황은 제가 예견한 대로 변했습니다.

사랑의 각막은행도 목사 한분이 외롭게 추진하던 일에 뛰어들었지요.

음악회를 열어 모금활동을 벌일 때 실질적인 효과에 대한 비판이
있었지만 그렇게 해서 이른바 가진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 있었습니다.


-은행계에서는 평행원으로 시작, 50대초반에 은행장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로 꼽히는데 처음부터 은행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하셨습니까.

<> 김회장 =대학 졸업후 4급공무원시험에 합격, 서울시청 계장으로
일하다가 주택은행에 다시 시험쳐 들어갔어요.

나이어린 선배가 심부름을 시켜도 아무 말 않고 열심히 했습니다.


-술.담배를 안하신다면서요.

흔히 은행업무에는 교제가 중요하다고들 하는데 술을 안마시고도
은행장이라는 최고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비결은.

<> 김회장 =담배는 처음부터 안피웠고 술은 지점장 시절에 끊었습니다.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임미라 무용연구소에 가서 한국무용도 배우고
창도 익혔어요.

음치를 면해 보려고 "석별" "눈물의 웨딩드레스" 등을 작곡한
정풍송씨에게 노래도 배웠지요.

결혼식 피로연에서 "석별"을 부르다 민망했던 기억도 있습니다.

정풍송씨에게는 25년뒤 외환은행장이 됐을 때 행가 작곡을 의뢰했지요.

승마도 그런 이유에서 배웠고.

구두가 성할 날이 없었어요.

덕분에 맡은 지점마다 좋은 실적을 올렸죠.

수십년동안 하루 4~5시간밖에 자지 않았어요.

솔직히 제가 영어를 잘합니까, 고등고시를 패스했습니까.

그저 부지런히 뛰어다녔지요.

하루에 수십명씩 만난 날이 허다합니다.

아침을 서너번씩 먹고.


-가족관계는.

부인께서 산부인과의사시죠.

여성이 직업을 갖고 있다 보면 집안일에 소홀해지기 쉬운데 갈등은
없었습니까.

<> 김회장 =1남1녀중 딸은 시집을 갔고 아들은 효성물산에 다니고
있습니다.

집에 있던 시간이 워낙 적어 갈등의 소지가 없었죠.

이제부터는 가족과 식사도 같이 하고 좀더 함께 지내려 합니다.

잘될지 모르겠습니다만.


-대기업들의 지역방송국 흡수문제와 위성방송 참여움직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김회장 =중소기업의 방송사업에는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습니다.

보도분야의 진출을 막고 지분을 제한하는 식의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겠지만 대기업들의 방송참여는 불가피하다고 봅니다.


-케이블TV와 위성방송의 관계는 어떻게 되리라고 보세요.

<> 김회장 =케이블TV나 위성방송, 지역민방이나 공중파방송 할 것
없이 자유경쟁에 맡겨야 합니다.

시장경제원리를 따르도록 해야죠.

케이블TV업체에서 공중파의 낮방송을 반대하고 있지만 언제까지 막을
수 있겠습니까.

케이블TV의 전문성을 특화시켜 정정당당히 승부하면 케이블TV쪽이
유리할 수도 있습니다.

< 정리 = 송태형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8월 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