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인간답게 살려면 최소한의 물질적 충족이 필요하다.

유교사회가 신분제도를 인정하면서도 경제적 균형을 항상 강조해
왔던 것도 이런 인식에 뿌리를 두고 있다.

맹자는 "산 사람을 부양하고 죽은 사람을 장사지내는데 아쉬움이
없도록 하는 것이 왕도정치의 시작"이라고 했다.

공자도 백성이 의식을 넉넉히 하는 "족식"을 정치의 기본조건으로
제시하면서 국가의 안정을 경제적 균형에서 찾고 있다.

물론 조선왕조 사회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양반이 서민을 수탈하는
폐단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유교적 교화의 기능이 마비되었을
때 나타난 타락상일 뿐이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조선왕조도 왕도정치의 실현에는 실패한 경우에
속한다.

맹자는 치자가 백성의 즐거움을 자기의 즐거움으로 알고 사는
"여민동악"의 정신을 고취시켜 사회의 경제적 균형을 이루도록 하기
위해 "부자가 되려 하면 어질지 못하고, 어진 사람이 되려 하면 부자가
못된다"는 경훈을 남겼다.

그러나 인간의 재물에 대한 탐욕은 한이 없는 것이어서 요즘도
"재산 불리기"가 삶의 목표인 것처럼 알고 살아가는 사람이 많다.

유교의 신념에 따라 청빈을 어진 사람이 되는 덕목으로 삼았던
조선왕조시대에도 역시 몰래 "재물 불리기"에 열중하다가 대간의
탄핵을 받아 온갖 수모를 당하고 죽은 뒤에도 사관들의 사필로 다시
한번 죽은 인물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들이 대부분 당대에 권세와 부를 떨쳤던 권신들이었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세조때 승지, 성종때 좌의정 영의정을 지내며 두 번이나 공신의
호를 받은 윤필상(1427~1504)은 "재산 불리기"에 대표적 인물이랄
만하다.

그는 축재 때문에 영의정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은 면했지만 사후에
사관의 냉혹한 비판을 받아야 했다.

"만백성이 우러러 보는 영의성 자리에 앉아서 밤낮으로 몸을 돌보지
않고 직임에 충실하기에 여념이 없어야 할 터인데 거부의 으뜸이
되었으니, 어느 여가에 재산을 경영하여 처자를 위한 계책을
꾸몄겠습니까"

홍문관 부제학 안처량이 윤필상을 탄핵하는 상소를 올렸다.

안처량은 "진실로 공을 앞세우고 사를 뒤로 하며 재산을 불리지
않았다면 비록 재상의 지위에 오래 있었다 해도 단연코 저절로 부유해질
수 없다"면서 그의 파직을 왕에게 요구했다.

윤필상은 나라에서 받은 전토와 노비, 녹봉이 많아 살림에 여유가
있었고 시속을 따라 몇몇 고을에 있는 농장에 장리쌀을 놓아 그 이식으로
재산을 불렸다고 변명했다.

또 절대로 벼슬을 팔아 뇌물을 받거나 시장에서 장사를 해서 재물을
늘린 것은 아니라고 극구 부인했다.

그러나 훗날 사관이 "성종실록"을 편찬하면서 이 상소사건 뒤에다
기록해 놓은 내용을 보면 윤필상의 말이 거짓이었다는 것이 명백히
드러난다.

윤필상은 부귀가 극진한데도 틈만 나면 항상 집곁에 지은 별실에
앉아서 몰려드는 사람들에게 물건을 파는 것을 감시했다.

그리고 평소에 명예나 절조를 생각하지 않아 공의에 용납되지 못했다.

일찍이 집에 불이 났는데 위문차 찾아온 손님이 "백년을 두고 탐한
물건이 잿더미가 되었습니다"라고 희롱하자 이웃사람들이 "윤필상의
병통을 바로 맞혔다고 쑥덕거렸다"

윤필상은 연산군때 진도에 귀양갔다가 그곳에서 연산군의 생모를
폐비시킬때 관여했다는 이유로 피살되고 말았다.

윤필상에 못지않게 공직에 있으면서 "재산 불리기"에 열중했던
인물로는 정인직와 한명회도 빼 놓을 수 없다.

요즘 항간에서는 며칠전 공개된 국회의원들의 재산에 대한 숱한
이야기들이 심심치 않게 떠돌고 있다.

특히 전직 고위공직자 출신 의원들의 재산규모나 내역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는것 같다.

그들의 재산을 보면 그저 놀라울 뿐이다.

예나 지금이나 역시 한국의 공직자들은 "재산 불리기"의 명수인가보다.

옛날 중국 노나라의 공의휴는 재상이 되자 자기집에서 베를 짜던
여인을 내보내고 채마밭의 아욱을 뽑아 버렸다고 한다.

백성들과 이익을 다투지 않기 위해서였다.

미국의 후버대통령과 케네디대통령은 큰 부자였기 때문에 대통령이
되자 봉급 전액을 자선사업에 썼다지만 한국의 국회에서는 아직
그런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뱁새가 깊은 숲속에 둥지를 튼다 해도 나뭇가지 하나면 족하고,
두더지가 강물을 마신다 해도 그 작은 배를 채우면 그만이다"

"장자"에는 이런 명구가 있다.

인간이 아무리 욕심을 부려보았댔자 실제로 살아가는데 필요한 재물이란
극히 적은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멋지게 비유한 말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사실을 잘 알면서도 끝내 재산에
대한 탐욕을 버리지 못하고 살아간다.

특히 일반인들의 귀감이 되어야 할 권력자 공직자 지식인 중에
"재산 불리기"가 삶의 목표인 것처럼 생각하고 사는 사람이 많다는 것은
그 사회가 병들어 가고 있다는 증거일 수 밖에 없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7월 3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