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옛날에는 동서양 모두가 나무를 태운 재를 물에 우려서 걸러 얻은
잿물과 삭은 오줌을 세제로 썼다.

단 중국에는 잿물에 응고제인 풀즙과 밀가루를 섞은 석, 잿물과 콩 또는
녹두로 만든 두라는 세제가 있었고 그것이 한반도로 전래되어 신라때부터
구한말까지 이용되었다.

비누라는 말이 역사상 처음 등장한 것은 1세기다.

야만족이 골이 고대로마인들에게 동물의 기름과 나무를 태운 재의 물을
혼합한 비누를 전수해 주었다.

8세기께는 이탈리아 사보나 지방에서 올리브 기름과 해초를 구워 얻은
알카리를 섞은 비누를 만들었다.

중세 암흑시대에는 비누로 몸을 깨끗이하는 것이 사람을 타락하게
만든다고 해서 인기를 잃었다가 10세기께부터 부유층의 목욕용으로
되살려졌다.

그에 따라 11세기께 도시에는 비누제조업자들이 나타났다.

지금과 같은 비누가 만들어진 것은 18세기초였다.

그때의 비누는 손님의 요구에 따라 잘라 팔던 커다란 덩어리였다.

한개씩 포장된 비누로 된 것은 1830년 미국의 뉴욕주 뉴버그에서였다.

그뒤 19세기 후반에들어 비누제조업이 미국과 영국에서 새로운
광고산업의 등장에 힘입어 가장 빨리 성장한 업종의 하나가 되었다.

독일의 화학자인 유스투스 폰 리비히가 1844년 "비누는 번영과 문화의
척도다.

부유하고 문화수준이 높은 국민일수록 비누를 더 많이 사용한다"고
한 예측과 맞아 떨어진 현상이었다.

독일이 제1차세계대전중에 식량난때문에 유지로 만드는 비누를 만들수
없게되어 그 대용품으로 개발한 합성세제가 2차대전중에 다시 빛을 보기
시작해 전후 세제시장에 알려 변혁을 가져왔다.

서양의 비누가 한국에서 본격적으로 이용된 것은 조선조말 개국이후
부터이고 합성세제가 상실판매된 것은 1966년부터였다.

그런데 현재 연간 국내시장점유는 합성세제가 2,000억원으로 비누의
2배나 된다.

저공해 고품장의 합성세제를 개발하는데 박차를 가해 오고 있는
마당이지만 생활용수를 오염시키는 주요인이 되고 있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때마침 일본의 도기제조업체인 토토가 때를 표면에 머무리지 않게하는
"박막을 개발해 욕조위생도기 유리건축소재 등에 원용하게 되었다 한다.

닦지 않아도 되는 안경이나 와이퍼없는 차 등 편리함도 있겠지만
합성세제는 닦지않아도 되는 건물 외벽과 유리, 가정의 용기 등으로
결과 되어질 생활용수공해의 엄청한 감소를 생각해 보면 반가움이
앞선다.

물론 합성세제 생산업체나 관련 산업에는 커다란 파장이 일겠지만
말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7월 2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