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홀로.그사람이 내옆에 있다고 상상하며 아침까지 그와 함께 걷네.

...강물에 반사된 거리의 빛. 별빛에 싸인 가로수. 그속에서 보이는
건 오직 나와 그사람

...그가 없는 세상은 상상할 수 없지만 그는 나없이 행복하겠지.

그를 사랑해, 사랑해. 하지만 나홀로"

짝사랑하는 마리우스의 부탁으로 연적 코제트에게 편지를 전한 뒤
애절하게 노래하는 에포닌.

관객은 무대에 빨려들 듯 에포닌의 움직임 하나하나를 숨죽이며
지켜본다.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공연되고 있는 뮤지컬 "레미제라블"
(28일까지)의 한 장면이다.

무대의 주인공은 필리핀 출신의 배우 마앤 디오시니오(22).

조연임에도 불구하고 맑은 음성, 가냘픈 몸매와 앳된 얼굴로 관객들의
시선을 집중시키고 있다.

출연배우중 유일한 동양계라는 점도 주목사항.

"에포닌이 지닌 캐릭터의 매력때문에 호응을 얻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가 부르는 노래들도 너무 좋구요.

못된 부모 밑에서 자랐지만 복잡하지 않고 지순한 성격이 젊은
관객들에게 어필하는것 같아요.

저는 단지 에포닌의 감정과 기분을 깔끔하게 전달하려 노력하고 있어요"

마앤은 90년 필리핀 마닐라에서 캐나다 위니펙으로 이민을 떠났다.

대학1학년때 "미스 사이공" 오디션에서 주인공 킴역으로 발탁돼 캐나다와
오스트레일리아에서 3년간 "미스사이공"에 출연했다.

순회공연은 이번이 처음.

"에포닌역을 제의받았을때 뜻밖이었지만 무척 기뻤어요.

동양인에게 이 역이 주어진 것은 처음이었거든요"

에포닌역을 맡은지 넉달가까이 됐지만 아직도 그의 감정변화를 관객에게
제대로 전달하는 것이 쉽지 않다고.

"어릴적 꿈은 우주비행사가 되어 달과 별을 만져보는 것"이었다는
마앤은 "무대에서 모든 에너지를 발산해 관객과의 교감을 느낄때 꿈이
이뤄지는 듯한 기분이 든다"고 말했다.

< 송태형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7월 1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