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웅진 신부(53)는 우리사회에서 그다지 영향력이 큰 인물이라고
할수 없다.

오신부는 그가 속한 천주교 교계로서도 고위 성직자에 들지 못하고
현대 가톨릭교회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할만한 신학자도 아니다.

그 오신부가 올해 막사이사이상 공공봉사부문 수상자로 선정됐다.

선정 이유는 "한국사회에서 가난한 자에 대한 박애정신을 일깨웠다"는
것.

"아시아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이 상은 57년 비행기 사고로 사망한
라몬 막사이사이 필리핀 대통령을 기념해 만든 것으로 5개부문 수상자에게
메달과 5만달러의 상금을 수여한다.

한국인으로서는 장준하 김활란 이태영 윤석중 제정구씨 등 모두
11명이 수상했었고 공공봉사부문 수상자는 김용기 (가나안 농군학교)
장기려 박사에 이어 세번째가 된다.

그의 수상 이유중 "가난한 자에 대한 박애정신을 일깨웠다"는 표현은
그가 76년에 시작한 충북 음성군 맹동면 인곡리에 있는 "꽃동네"를
뜻한다.

꽃동네는 부랑인 정신질환자 무의탁노인 알콜중독자 등을 수용하고
있는 국내 최대의 종합사회복지시설이다.

또 꽃동네는 "돈"과 "대문" 그리고 "철망"이 없는 "삼무"를 운영의
원칙으로 삼고 있다.

돈이 없다는 것은 꽃동네 운영을 매달 1,000원씩 회비를 내는 후원
회원들의 성금으로 경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가난한 이의 성금"이 89년에는 경기도 가평군에 제2
꽃동네를 건립할수 있게 했고 현재 모두 3,000여명의 식구를 수용하고
있다.

오신부의 소망은 앞으로 꽃동네를 전국에 5개소 더 만들어 버림받은
이들의 안식처를 마련해 주는 것이다.

오신부는 충북 청원군 현도면 산골 농가의 6남매중 넷째로 태어났다.

그의 가정은 초등학교 4학년때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진학을 포기할
만큼 가난했다.

그는 독학과 고학으로 대전 대성고교를 졸업하고 광주 대건신학교에
들어가 76년에 사제로 서품됐다.

그가 충북 음성군 무극천주교회 주임 신부로 부임했을때 걸인 최귀동
노인을 만났고 그의 영향으로 수중에 있던 돈 1,300원을 털어 비닐움막
5채에 부랑자 18명을 수용한것이 꽃동네의 시작이었다.

오신부는 "꽃동네 사업은 자선이 아니라 인간구원"이라고 말한다.

인간구원의 원동력은 "사랑"이므로 그는 "사랑 자체인 하느님의
도구일뿐"이라고 겸손해 한다.

우리사회 그늘진 구석에서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이 있는 한 우리사회에는
희망이 있다고 생각된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7월 1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