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T-LCD(초박막 액정표시장치)시장을 점령하라.

삼성전자 LG전자 현대전자 등 국내 3사는 올해 사업분야에 새로운 항목을
추가했다.

TFT-LCD가 그것이다.

일본 업체들이 독점하고 있는 이 분야 시장에 본격 진출한 것.

출사표를 먼저 던진 업체는 삼성전자다.

삼성은 유리기판 월 2만장 가공규모로 올초 양산을 시작했다.

내년에는 월 2만장 규모의 생산라인을 또 깔기로 했다.

계획된 투자금액은 3,500억원.

LG전자도 월 2만장 가공규모의 공장을 가동중이다.

현대는 올 연말께 양산을 시작하기로 했다.

이 회사는 3,000억원을 추가로 투자해 신규라인을 지을 계획이다.

현대전자는 현재 건설중인 월 2만장 가공규모의 공장이 완공되는 대로
6,600억원을 들여 월 3만장 가공규모의 공장을 착공키로 했다.

한국업체들의 이같은 공격적인 투자를 일본 업계는 경계의 눈으로 보고
있다.

일본경제신문은 최근 "삼성 현대 LG 등 한국업체의 신규참여는 시장교란의
원인이 될 것"이라며 "한국업체의 생산량은 얼마 안되지만 미국 PC메이커들
이 일본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한국업체로 부터 구매를 늘릴지도
모른다"고 보도했다.

일본업체들이 경계하는 것은 단순히 한국업체들의 무서운 투자공세만이
아니다.

삼성전자는 올해초 크기 24.1인치의 벽걸이 TV를 선보였다.

이는 당시로서는 세계 최대 규모였다.

세계 최초 개발이라는 말은 그 다음날로 무색해지긴 했다.

샤프가 28인치 벽걸이TV를 선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삼성이 24.1인치를 내놓자 마자 더 큰 TV를 개발했다며 한국업체
기죽이기에 나설만큼 일본 업체들은 긴장하고 있다.

한국업체의 기술력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사실 국내업체는 그동안 기술개발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삼성은 "광시야각 분야에서는 세계 최고 수준"(김광호 삼성전자 부회장)을
자부하고 있다.

LG전자는 일본 알프스사와 손잡고 첨단 제조공법을 개발했다.

현대전자는 미국에 TFT-LCD 관련 연구법인을 3년전에 설립했다.

과거에는 일단 시작하고 보자는게 주류를 이뤘다.

그러나 이 분야에서 만큼은 착실한 기술기반을 갖고 생산을 시작하는 방식
을 택했다.

그만큼 시장성이 높고 투자할 만한 가치가 있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물론 한국업계는 약점을 갖고 있다.

원천기술이 없다는 점이다.

원천기술에 대한 특허는 일본 기업들이 거의 다 차지했다.

따라서 지적재산권으로 견제구를 던져올 경우 당해낼 재간이 없다.

국내업계의 대응 카드는 크로스 라이선스다.

우수한 기술을 개발해 일본업계와 교환한다는 것.

삼성전자가 일본 후지쓰와 광시야각 기술을 주는 대신 제조기술을 공급
받기로 한 것이 대표적 예다.

원천기술을 일본 기업들이 갖고 있지만 이를 개량해 새로운 기술을 만든뒤
주고 받는다는게 국내업계의 복안이다.

어쨌든 제2의 반도체라고 불릴 만큼 시장성이 무한한 TFT-LCD시장에 국내
업계는 힘찬 첫 발을 내디뎠다.

한일 업계가 반도체 외에 또 다른 전쟁을 시작했다는 뜻이다.

국내업계가 반도체의 신화를 재현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7월 1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