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학병원 응급실.

비내리는 일요일 새벽 2시였는데도 그곳은 시장바닥보다 약간 덜 복잡한
정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병상이 복도까지 차있었다.

추우니 담요를 달라는 사람, 벌써 응급실에서 지새운게 며칠짼데 언제
입원실로 옮길 수 있느냐고 묻는 환자가족들과의 응대에 바쁜 간호사에게는
말을 부치는데도 한참은 기다려야 했다.

뭔가 잘못된 것 같아 종합진달을 받으려고 해도 두달은 기다려야 하는 것이
우리들의 현실이다.

기다리다 보면 결리던게 어느 새 없어져 피를 빼고 아픈 주사를 맞아야
하는 고통을 겪지 않아도 되는 것을 다행이라고 할까.

불행이라고 할까.

심각한 입원실부족이 빚어지는 등으로 의료서비스에대한 공급이 수요를
못따르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만큼 투자가 모자랐기 때문이다.

충분한 수요, 곧 투자를 하면 돈을 벌수 있는데도 의료부문 투자부족이
심한 까닭은 우리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의료보험의 필요성과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다.

그러나 그것도 역기능은 있게 마련이다.

의료부문 투자부족도 그런 측면에서 원인을 찾을수 있다.

의사들중에는 의료보험수가가 낮기 때문에 의료부문에 대한 투자부족이
빚어지고 서비스개선이 한계에 부딪치고 있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많다.

설득력있는 일면이 있다.

그러나 의보수가는 즉각적으로 물가에 영향을 미치고 현재의 수가로도
지역의료보험조합의 대부분이 심각한 적자이고 보면 해결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의료보험을 취급하지 않는 병원.

비싼 고급종합병원을 신설토록 하면 어떨기.

이 병원을 회원제로 운용.

그 회원에 대해서는 비싼 회비를 내게하는 대신 의료보험가입의무를 면제
하면 어떻게 될가.

의료부문에 대한 투자유발과 이에 따른 기존 병원의 수급부균형해소에는
상당한 효과가 있을 것만은 명확하다.

그러자 그것은 우리사회의 관념상 용납되기 아마도 어려울 것이다.

사회보보장제도로서의 의료보험 그 본질을 저해하는 것이란 비판이 거세게
제기될게 뻔하다.

부로조아들만의 병원이 생길 경우 기존병원의 서비스도 그 문제점이 질과
양에서 더욱 분명해져 개선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동시에 사회적 갈등을 증폭시킬 가능성도 크다.

어느 쪽이 더 바람직한 것인지는 판단의 문제다.

현실적인 이익과 관념적인 가치중 어느 것을 중하게 보느냐는 문제일
수도 있다.

어는 쪽이 우리 사회전체를 위해 더 좋은 지를 여기서 단정지울 이유는
없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것은 "비내리는 일요일 새벽2시"을 입원실이 없어
응급실에서 지새워야 하는 일이 없어질수 있다면 그렇게 하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는 점이고, 또 그들도 그런 생각을 스스럼
없이 얘기할 수 있는 분위기가 중요하다는 점이다.

지금 우리가 봉착하고 있는 어려운 과제들중에는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어렵지 않게 상당히 해결할 수 있는 것들도 결코 적지 않다.

입시문제 등록금문제로 홍역을 앓고 있는 대학문제도 그중 하나다.

내가 다녔던 대학은 국내에서 비교적 재정사정이 좋은 사립대학으로
그 총장님은 이 시대가 요구하는 사립대학 총장의 역활에 매우 충실한
분이다.

교사신축기금을 내라는 그 분의 당부말씀중 우리들 동문들이 정말 그냥
있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했던 한마디는 이렇다.

"그래도 여러분들이 다녔던 60년대에는 화장실을 학생용과 교수용으로
구분하고 교수용에 자물쇠를 채우는 일은 없었잖아..."

"눈부신 경제성장"이 이루어졌는데 왜 우리들의 대학은 이처럼 가난해
졌을까.

이렇게 어려운 상황인데도 기부금입학 얘기가 나오지 않는다면 오히려
이상하다고 본다.

그것은 의료보험과는 또다른 측면에서 관렴적이다.

설혹 기부금입학제의 필요성을 국민 모두가 인정한다고 치자.

그렇다해도 그것은 하기 어렵다.

어느 대학이 우리는 기부금입학제를 채택했노라고 공개적으로 나설수
있고, 어느 학부모가 나는 우리 아들을 기부금으로 입학시키겠다고 나설수
있을까.

하지만 풀 수 있는 방법은 의외로 쉽다.

누구를 얼마나 어떻게 뽑을지를 대학이 알아서 하도록하면 된다.

좋은 학생을 뽑아 그들의 사치활동이 돋보여야 학교의 성가가가 유지된다고
볼때 대학의 자율이 부작용을 극대화할 우려는 생각보다 적다.

총장도 선출제인 90년대말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지금도 문교정책은 학원모리배가 횡행하던 50년대말의 현실인식을 깔고
있다.

어쩌면 그게 바른 인식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대학에 대한 기부를 늘려 교육환경을 개선해 나가다 보면 대학이
제자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해마다 되풀이 되는 등록금인상반대 데모도
어쩌면 수구러들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해보는 사람도 늘어나야할
필요가 있다.

관념의 벽에 부딪친 문제는 그밖에도 얼마든지 있다.

SOC문제가 심각하지만 재정적자를 내서는 안된다는 생각, 거의 맹목적인
통화방정식의 신봉자들, 따지면 끝이 없다.

신탁계정에 있던 돈이 저축성예금으로 옮겨 명목상 총통화가 늘어도
난리다.

이제 문제를 좀 본질적인 차원에서 생각해볼 때가 됐다.

해묵은 고정관념, 교과서적인 이론을 금과옥조로 모셔야 할 이유는 없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7월 3일자).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