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구, 저걸 어째?"

대부인이 고함을 지름과 동시에 옆에 있던 왕부인, 설부인, 희봉,
보채 들이 원앙 주위로 모여들었고, 할멈과 시녀들이 원앙에게서 급히
가위를 빼앗았다.

이미 잘려나간 머리카락은 방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원앙은 그 머리카락을 싸안듯이 하며 엎드려 흐느꼈다.

"저애 머리를 다시 땋아주어라"

대부인이 시녀들에게 지시를 하자 시녀들이 원앙의 머리를 매만지기
시작했다.

원앙은 숱이 많은 편이어서 한줌이나 잘려나간 머리이긴 하나 땋아
올리는데는 지장이 없었다.

시녀들이 자기머리를 땋아올리는 동안 원앙은 멍하게 고개를 치켜든 채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그놈이 내가 원앙을 애지중지하고 있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첩으로
데려가려고 해? 불효막심한 놈"

대부인은 아들 가사를 그놈이라고 욕을 해대며 화가 잔뜩 난 눈으로
좌우를 둘러보았다.

희봉과 왕부인이 슬그머니 대부인의 시선을 피하였다.

"너희들도 마찬가지야. 그놈의 장단에 춤을 추면서 나를 속이고
따돌렸어.

원앙이 저애의 마음을 돌려놓으려고 너희들이 얼마나 들볶았으면 저애가
머리를 자르고 저리 야단을 피우겠어?"

"저희들은 잘 모르는 일인데요. 억울합니다"

왕부인이 희봉의 동의를 구하며 변명을 늘어놓으려다가 대부인의 서슬에
눌려 입을 다물고 말았다.

대부인은 형부인을 오도록 하여 남편 첩 중매나 서고 다닌다고 호통을
쳤다.

그리고는 아들 가사까지 부르려고 하자 형부인이 싹싹 빌다시피하며
대부인을 말렸다.

"이 모든 일은 제가 꾸민 일이오니 저를 꾸중하시는 것으로 그쳐주세요.

남편이 쓸쓸하게 늙어가는 모습이 안쓰러워 제가 그만 분별없는 짓을
하고 말았습니다.

다른 애를 구하는 한이 있더라도 원앙이 이야기는 이제 입밖에도 내지
않겠습니다"

그리하여 형부인이 간신히 대부인을 달래고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형부인이 집으로 돌아와 대부인이 대로한 사실을 가사에게 전하자
가사는 씁쓸하게 입맛을 다시며 투정을 부리는 투로 말했다.

"그럼 돈을 주고 사서라도 원앙이보다 더 참한 애를 하나 구해줘"

결국 형부인이 각처에 사람을 보내어 여러 모로 원앙을 닮은 여자애
하나를 물색하여 오백 냥에 사가지고 가사에게 안겨주었다.

언홍이라는 이름을 가진 그 여자애는 열일곱살이었다.

가사는 원앙이 대신 언홍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7월 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