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행정쇄신위원회에서는 수도권에 대기업의 공장증축을 허용하자고
제안한 일이 있다.

경기도지사는 수도권에 대한 개발규제를 풀어야 한다고 했고 정부안에서도
규제를 모두 풀어주는 대신 개발이익을 환수하면 되지 않느냐 하는 의견이
나오고 있는것 같다.

대기업들이 수도권에 공장을 지을수 없어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산업계의
고충과 지역발전에 걸림돌이 된다는 지역 주민들의 고충을 덜어주자는 뜻인
것 같다.

그러나 이러한 발상은 목전의 소리에 얽매여 국가백년대계를 그르치는
단견이라 아니할수 없다.

왜 그런가.

우선 21세기의 선진권 진입을 앞두고 우리나라에 가장 심각한 문제가 무엇
인가 부터 생각해 보자.

먹을것 입을 것인가, 아니면 당장의 생산문제 수출문제인가, 그 어느 것도
아니다.

근본 문제는 교통.주거.환경.교육.휴식공간부족 등 이른바 생활공공재의
부족 문제이다.

이것들이 앞으로 생활의 질을 결정할 뿐 아니라 성장반경을 결정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앞으로 우리나라는 이들 생활공공재의 절대부족이 고비용을
유발하여 성장감속의 주범이 될 뿐 아니라, 경제가 성장하여 고소득이
되더라도 저생활국이 될수 밖에 없는 근본 원인이라고 보는 것이다.

그러면 이들 생활공공재의 부족 문제는 어디서 오는 것인가.

이것은 인구의 수도권 과잉 집중에 원인이 있다.

지금 남한 인구의 45%가 수도권에 집중되고 있는데 이러한 나라는
싱가포르나 홍콩과 같은 도시국가를 제외하고는 그 예가 없다.

생활이 쾌적하기로 소문난 북유럽의 나라에는 인구 50만이 넘는 도시가
없으며, 수도권 집중률이 높다고 하는 일본이나 멕시코도 25%를 넘지
않는다.

한해 남한인구는 50만명이 늘어나는데 그중 45만명이 수도권에서, 그리고
나머지 5만명은 부산권에서 늘고 있다.

다른 지역은 인구증가가 정지되어 있는 것이다.

수도권에서 매년 늘어나는 45만명의 인구는 자동차 15만대와 주택 15만채의
신규 수요를 쏟아 놓고 있는 것이다.

그 뿐인가.

시골에는 학생이 없어 교실이 텅텅 비어 있는데 수도권에서는 새로 학교를
짓는데 막대한 돈을 투입하고 있으며, 심각한 환경문제와 휴식공간 부족
문제를 유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을 그대로 방치한 채 도로를 넓히고, 교통혼잡 부담금을 받아서
서울의 교통난을 해결하고, 집을 지어 주거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이 정책
효과 면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가는 깊이 생각해 볼 문제이다.

교육문제나 환경문제 휴식공간문제 등도 같은 이치이다.

지금 대전에 일터가 있는 사람은 집을 서울에 두고 대전에는 혼자 내려가
있고, 일터가 공주에 있는 사람은 대전에서 출퇴근하고 있다.

이와 반대로 돼야 옳지 않은가.

그러면 이렇게 된 원인은 어디 있는가.

그 원인에는 크게 두가지가 있다.

그 하나는 수도권에 대한 소득적 특혜, 즉 수도권에 살아야만 소득과 편익
의 기회가 많고 기업도 공장을 수도권에 지어야 이익이 크다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서울에 살아야만 자녀들 교육을 잘 시킬수 있다는 그릇된 제도 때문
이다.

이러한 문제들은 그동안 시정하지 못한 정책의 실패에 근본책임이 있는
것이다.

지금 해야할 일은 특단의 조치를 취하여 이러한 근본문제에 단호히 대처
하는 것이다.

첫째로 수도권 집중을 억제하기 위한 규제를 실효있게 강화해야 한다.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것이 마치 국토개발문제나 생활공공재에 대한
것으로 생각한다면 이것은 큰 착각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직접생산 부문, 즉 시장부문은 규제를 풀어야 하고 간접
생산 부문, 즉 공공부문은 규제를 강화해야 하는 것이다.

예컨대 선진국에서는 건축규제나 국토공간배치 규제가 우리보다 훨씬
세밀하고 철저하며 수원지에서는 낚시도 금지되고 있는 것이다.

둘째로 소득적 특혜를 상쇄하기 위해 전면적인 권역별 차등세 제도를 도입
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전국을 서울-부산권,기타의 직할시, 그리고 나머지 지역등 세개의
권역으로 나누어 소득세 법인세 재산세 부가가치세 상속세 등 모든 세금의
세율을 실효가 있는 수준까지 차등 적용하는 것이다.

끝으로 교육기회의 지역적 차별을 없애는 방향으로 교육개혁을 단행해야
한다.

교육은 국가의 백년대계이며 교육의 목적은 국민 잠재력을 개발하자는
것이지, 이미 개발된 지식을 경시하자는 것이 아니다.

서울 학생이 시골 학생보다 유전적으로 우생이라고 인정해야 할 것인가.

도-농간의 수학능력시험 성적격차는 잠재력의 차이라기 보다 후천적 환경
차이로 보아야 할것이다.

이런 점에서 내신성적 비중을 70% 이상으로 올려 입시제도를 수능성적
중심의 절대평가보다도 내신 중심의 상대평가 체제로 개혁해야 한다.

이러한 특단의 조치들이 확고하게 추진된다면 수도권의 인구분산 효과는
가시적으로 나타날 것이다.

이와 동시에 교통난 환경난 주거난 교육난 휴식공간난등 고질적인 문제들도
비로소 풀리기 시작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7월 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