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고속철도 노선 확정을 얼마 남겨놓지 않은 지금 관련 지방자치단체들은
두 그룹으로 나뉘어 마치 패싸움을 벌이듯 맞서고 있다.

이 대결은 애초에 대전시.충청북도와 충청남도간의 대립으로 시작됐다.

대전시와 충북도가 호남고속철도가 천안~대전~논산을 지나야 한다고 주장
하자 충남도가 천안~공주~논산 노선으로 직진해야 한다며 다른 주장을 펴고
있는 것.

그런데 최근 광주시 전라남도 전라북도가 운행시간이 단축되는 충남도의
직진노선안을 지지하고 나서면서 노선대결은 새로운 양상으로 확대됐다.

호남고속철도 노선을 둘러싼 이같은 대립은 지방자치시대 개막이후 표출된
수많은 갈등의 한 사례에 불과하다.

지방자치가 실시된 지난 1년동안 지역이익을 겨냥한 다툼은 끊이지 않았다.

관치시대에 정부의 강력한 통치력에 억눌려 있던 주민들의 욕구가 한꺼번에
터져나온 때문이었다.

광역자치단체들끼리 다투는가 하면 광역자치단체와 기초자치단체가 싸우고
지자체와 지역주민이 맞서는등 지역이기주의는 우리 사회에 급속히 번졌다.

혐오시설이나 위험시설을 기피하는 님비(NIMBY; not in my back yard)
현상이나 지역에 유익한 시설을 유치하려는 핌피(PIMFY; please in my front
yard) 현상은 겨우 걸음마를 시작한 지방자치단체들을 마구 흔들곤 했다.

호남고속철도 노선과 관련한 충청.호남 지자체들의 핌피현상은 상대에게
삿대질할 정도로 심한 편은 아니다.

그러나 당장 금전이 오가는 문제에 있어서는 지자체들은 한치도 양보하지
않은채 오기를 부리기도 했다.

서울지하철 7호선 도봉차량기지 보상비를 둘러싼 서울시와 의정부시간의
싸움이 대표적인 사례.

이 문제는 지난해 서울시가 의정부시 장암동에 차량기지를 건설하면서
의정부시가 입는 손해만큼 보상하기로 약속한데서 비롯됐다.

의정부시는 그후 위락공원을 조성했을 경우의 수익금을 계산, 서울시에
4백14억원을 요청했다.

그러나 서울시는 불확실한 미실현이익을 가정해 터무니없이 많은 돈을
요구한다며 거절했다.

그러자 의정부 시민들이 서울시청까지 몰려와 시위를 벌이는 지경에
이르렀다.

두 지자체는 협상으로도 문제가 풀리지 않자 끝내 내무부 분쟁조정위원회에
중재를 의뢰하기에 이르렀다.

지역주민이나 지자체들의 님비현상은 대부분 쓰레기처리장이나 묘지
분뇨처리장과 같은 혐오시설, 핵폐기물처리장 원자력발전소와 같은 위험
시설, 고아원 양로원 장애인수용시설 공해유발시설과 같은 비선호시설과
관련해 발생했다.

충남 청양군의 경우 지난해 공원묘지조성사업 대상지로 장평면 중추리를
선정했다가 이 지역 주민들이 강력히 반대하자 화성면 수정리로 바꿨다.

서울시는 3년후면 묘지가 바닥날 것으로 예상되자 파주시 용미리묘지를
인근 군부대 이전지로 확장할 예정이나 파주시가 반대하고 있어 애를 먹고
있다.

서울 강남구는 최근 일원동에 자원회수시설(쓰레기소각장)을 짓기 시작
했으나 주민들의 반대로 규모를 줄이기로 했다.

전남 광양시는 죽림리 일대에 쓰레기매립장을 조성하기 위해 94년말 공사에
착수했다가 인근 8개 마을 주민들이 작업차량의 공사장 진입을 막는등
강력히 반대하자 수차례 협상을 거듭, 각종 지원을 약속한 끝에 지난 7일
에야 합의에 이르렀다.

이같은 사례에서 보듯 지역이기주의는 지역이익을 먼저 챙기려는 경향이다.

그러나 이것이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다.

멀티미디어단지나 월드컵경기를 유치하려는 지자체들의 경쟁은 유익한
결과를 가져올수 있다.

또 지역이기주의는 소수의 이익까지 보호한다는 점에서 민주적이라는
평가도 받는다.

그러나 지역이기주의는 공익을 무시하거나 행정효율을 떨어뜨린다는 점에서
비판을 면할수 없다.

특히 이를 합리적으로 처리하는 경험과 능력을 갖고 있지 않은 경우엔
지역발전과 국가경쟁력을 저해할수 있어 문제로 꼽힌다.

충남대학교 김동훈교수는 이같은 문제와 관련, 지난 20일 명지대학교
지방자치대학원 주최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학술세미나에서 "지역
이기주의는 물리적인 힘이 아니라 대화와 타협과 합리적인 분쟁조정기구를
통해 극복하는게 바람직하며 공생.공영의 자치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지역주민 자치단체 중앙정부가 다같이 힘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 김광현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6월 2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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