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그리스 아테네에서나 가능했던 직접민주주의가 우리나라에서도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지난해 11월 서울 강남구 압구정 1동에서는 민선 단체장이 들어선 후 처음
으로 주민투표가 실시됐다.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주변 방음시설의 설치방법을 놓고 주민들의 의견을
듣기 위해 실시된 투표였다.

그러나 주민들의 관심을 끌만한 사안이 아닌데다 홍보부족등으로 지나치게
참여율이 낮아 처음으로 시도됐던 이 실험은 실패로 끝났다.

반면 지난 5월 30일부터 6월 2일까지 서울 광진구에서 실시된 주민투표는
큰 성과를 거뒀다.

안건은 동경계 조정과 법정동의 명칭변경. 투표 대상인 6천2백68가구
가운데 절반이 넘는 3천7백여가구가 참석, 법정동 명칭조정안에 대해 77%가
찬성했고 동 경계조정안은 81%의 주민이 반대했다.

구는 이같은 주민의견을 반영, 동사무소 설치조례등을 개정, 법정동 명칭을
변경키로 했고 동 경계조정은 당분간 추진하지 않기로 했다.

이같은 자치단체들의 노력은 정책의 소비자인 주민들의 이해와 협조 없이는
효과적으로 정책을 집행할 수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또 행정관청에서만 독단적으로 정책을 결정하는 것 보다는 민간의 참여를
활성화시켜 더 폭넓은 아이디어를 얻으려는데 있다.

시민들의 참여를 확대하는 가장 일반적인 방법은 정책의 기획, 집행단계
에서 시민과 전문가들이 참여할 수 있는 각종 위원회의 구성이다.

서울시에서만도 시민과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78개의 각종 위원회가 활동중
이다.

이 가운데 가장 주목되는 위원회는 "녹색시민위원회".

이 위원회는 보통 정책에 대한 조언과 심의기능에 중점을 둔 기존 위원회와
달리 정책을 집행하는 기능도 갖췄다.

이 위원회는 환경오염감시, 각종 정책에 대한 공청회개최등 집행기능까지
담당, 새로운 형태의 시민참여조직으로 관심을 불러 모으고 있다.

이같은 예 외에도 각 자치단체는 다양한 주민참여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다.

주민발의제를 연상시키는 시민감사청구제도가 서울시에서 운영되고 있다.

이미 보도블럭 부실시공, 아파트 관리규정에 대한 관리감독 실태등 다양한
분야에서 감사가 결정되거나 이뤄지고 있다.

주민들의 의견을 적극 반영하기 위한 다양한 아이디어도 백출하고 있다.

충북 제천시는 고질적으로 해결되지 않거나 이해관계가 대립된 집단민원을
해결하기 위해 공무원과 변호사, 관내인사등이 참석하는 민원법정이 운영
되고 있다.

지난 2월 5일에는 민원법정을 통해 2년여동안 고질민원이 돼왔던 송학산
토석채취권문제를 해결하는 성과도 낳았다.

인천 부평구는 시민들과 접촉이 많은 개인택시운전사협의회 회원 38명을
"달리는 민원실"로 위촉, 택시안에서 주민들이 털어놓는 불편사항과 잘못된
점들을 신속하게 수집, 구청으로 전달토록 했다.

민선단체장들도 사무실을 박차고 나가 현장에서 민원인들의 목소리를
듣는데에도 열을 올리고 있다.

전라북도는 다양하고 생상한 주민의 소리를 듣기 위해 14개 전 시군을
도지사가 순회하며 주민들의 질문에 도지사가 답변하는 주민공청회를 실시
하고 있다.

아예 성동구처럼 여론조사전담기구인 "성동리서치"를 설치, 주요 시책에
대한 주민들의 반응을 직접 알아보는 기회를 마련하는가 하면 대구 남구는
민원인들과의 접촉을 넓히기 위해 구청장실을 1층 민원실 옆으로 이전했다.

이같은 자치단체들의 노력은 주민들이 생활주변에서 느끼는 불편사항들을
해소할 수 있고 각종 정책의 집행을 더욱 원할히 하는 한편 주민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지방자치 본래의 취지를 실현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아직 몇가지 해결해야 할 과제가 남아 있다.

대부분 자치단체에서 각종 시민위원회가 활약중이지만 이들과 지방의회
사이의 권한과 역할에 대한 논란의 여지가 있다.

서울시에서 운영되고 있는 도시계획위원회는 도시계획변경등 주요 사안에
대한 실질적인 결정권을 갖고 있고 물가대책위원회도 공공요금인상에 대한
사실상 최종 결정단계로 활용되고 있다.

이에따라 주민대표기관인 시의회의 권한과 마찰을 빛을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또다른 문제는 민선 단체장들의 주민의견을 반영하려는 노력이 지나치게
전시행정으로 흐를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행정의 투명성을 높이고 공개행정을 통해 민원발생을 근본적으로 막아
내려는 노력보다는 눈에 보이는 전시성 행정으로 민원에 대처한다는 비판이
그것이다.

송광태 서울시정개발연구원 도시경영연구부연구원은 "주민들이 행정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확대하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지만 민원이 발생했을
때 공익보다는 소수의 목소리만 높여주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며 "주민
참여의 목적이 행정을 투명성을 높이는데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둬야 할 것"
이라고 강조한다.

<김남국기자>

(한국경제신문 1996년 6월 2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