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8개월된 딸아이의 엄마 이진영씨(28).

그는 요즘 아침7시에 집을 나서 밤 11시가 돼야 집으로 돌아온다.

직장때문은 아니다.

그가 매일아침 가는 곳은 서울대 법대도서관.

서울대 제약학과 대학원을 졸업한 92년 경영학전공의 유학생 남편을 만나
미국으로 갔던 그는 현지에서 공부를 계속하려 했으나 남편이 국내
금융기관에 취직하는 바람에 94년초 귀국했다.

그리고 곧 아기를 가져 당분간 학업을 접어두고 말았다.

다른 일을 잊고 지낸 것도 잠시.

무언가 나만의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는걸
깨달았다.

그는 약사자격증을 갖고 있지만 그보다는 법조계에 더 매력을 느꼈다.

2년여 미국생활에서 법조인으로 활약하는 여성들의 모습에 자극을 받았고
3명이나 되는 여고동창 판사들도 촉진제가 됐던 것.

그가 택한 길은 법대 편입.

올봄 법대 3학년에 들어가 94학번 후배들과 함께 공부하고 있다.

이씨는 "조금은 우회한듯도 하지만 이 나이에 시도하지 못할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하며 환히 웃는다.

덕성여대 국문과 4학년에 재학중인 최혜림씨(22).

그는 요즘 일주일에 3번 신림동에 있는 고시학원에 나간다.

수강과목은 헌법 행정학과 회계학.

7급 행정직공채시험을 준비하는 중이다.

그는 2학년말부터 진로선택에 고심하기 시작했다.

교사 공무원 학원강사등 몇가지길 가운데 공무원으로 정한 것은 지난해말.

결정에는 외무부에서 행정직 7급으로 근무중인 선배의 조언이 한몫했다.

"아직 졸업전이라 찬찬히 준비하면 되리라 생각해요. 학원에 와보니 대학
졸업생은 물론 직장인도 상당수 있어요"

약사자격증을 소지한 주부의 법대 편입, 여대생의 고시학원수강.

이는 여성들 사이에 최근 눈에 띄게 높아진 공직의 인기를 반증하는
예이다.

왜 여성들이 공직에 몰릴까.

"남녀가 함께뛰면 세계가 우리마당".

정부가 95년부터 실시해온 "고용평등의달"(매년 10월) 주제이다.

공무원으로 분야를 한정하면 이 구호처럼 우리나라 여성들의 사회진출의
미래는 매우 밝다.

가장 큰 이유는 여성공무원할당제.

지난해 10월초 "여성의 공직참여비율제고"를 골자로한 세계화추진위원회
보고서가 나온뒤 올해부터 행정고시 외무고시와 7급 행정.공안직시험에서
여성채용 목표율을 10%로 정하고 합격자가 목표에 미달할 경우 성적순에
따라 미달인원만큼 추가 합격시키게 됐다.

목표치는 97년 13%, 98년 15%, 99년 18%, 그리고 2000년 20%로 올라간다.

김장숙 정무제2장관은 "여성이 전체공무원중 25.6%, 공채시험합격자중
24.5%에 달하지만 5급이상 여성공무원은 2%도 못돼 기형적인 상황을 보이고
있다"며 "추가합격이기 때문에 일각에서 우려하듯 남성합격자가 피해를
입는 것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이미 지난 4월12일 공시된 외무고시최종발표에서 한사람의 여성추가합격자
가 나왔다.

여협고문변호사 김찬진씨는 "미국에서는 60년대부터 "소수그룹 우대법
(Affirmative action)"이라는 이름으로 여성 흑인등 소수그룹에 대학입시
에서 특혜를 줘 왔다. 그결과 미국 법률회사종사자의 절반가량이 여성"
이라고 말한다.

안희옥 서울시가정복지국장은 "여성도 무한정의 특혜를 바라는 것은
아니다. 2000년이라는 일정시점까지 여성공직자의 수를 늘리면 이후에는
여성에게도 자생력이 생길 것이라 자신한다"고 말한다.

여성공무원증가는 이미 하나의 대세.

95년12월 과천종합청사에 세워진 탁아소는 여성공무원들이 기대해마지않던
희소식이자 아직은 갈길이 멀다는 것을 보여주는 이정표이다.

200명을 수용하는 이곳에 3세이상 어린이가 들어가려면 1년가량 기다려야할
정도.

(한국경제신문 1996년 6월 2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