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갑자기 국내 금융시장 개방일정에 가속 페달을 밟고 나섰다.

지난 17일 재정경제원이 오는 98년 12월부터 외국인이 100% 투자한 은행및
증권사의 현지법인 설립을 허용하며 2000년 이후부터는 외국인 주식투자
한도를 철폐하는 것을 골자로 한 금융시장 개방일정을 확정발표한 것이다.

"어차피 맞을 매는 빨리 맞는 것이 낫다"는 옛말처럼 기왕에 개방할 것
이라면 몇년 더 빨리 빗장을 연다고 문제될것 없다는 시각도 있을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에 발표된 개방 일정이 의외로 받아들여지는 까닭은
급격한 정책방향 선회및 개방에 대비한 능동적인 대책마련이 없기 때문이다.

그동안 금융정책 당국은 국내 금융산업의 국제경쟁력을 강화한 뒤 단계적
으로 금융시장을 개방한다는 "선경쟁력강화 후시장개방"이라는 원칙을 고수
해왔다.

그러나 이번에는 "국내 금융기관들의 경쟁력을 강화시키는 지름길은 시장
개방"이라는 말로 앞당겨진 금융개방 일정을 합리화하고 있다.

경쟁력 강화를 위해 시장 개방이라는 충격요법을 쓰는 것은 분명히 최선은
아니다.

그러나 몇 십년동안 정부의 과보호 속에서 독과점체제가 굳어졌고 재무부
출신의 이른바 모피아(MOFIA)가 금융기관 운영을 장악한 현실에서 시간에
쫓긴 나머지 차선책으로 선택할 수는 있다.

문제는 이같은 현실을 인정하지 않고 버티다 OECD 연내 가입을 위해 갑자기
입장을 바꾸는 정책의 난맥상이다.

민-관이 일치 단결하여 치밀하게 개방에 대비해도 어려운 판에 원칙없는
정책으로 혼란만 커진 셈이다.

이런 혼란을 감수하며 올해 안에 OECD에 가입해야 하는가.

그리고 그동안 재경원은 경쟁력강화의 지름길인 개방을 지연시켜온 걸림돌
이었단 말인가.

금융시장을 앞당겨 개방할 때 또 한가지 걱정되는 것은 국내 금융기관의
경쟁력 강화및 안정적인 거시경제 운영을 위한 구체적인 대비책이 없다는
점이다.

정부는 산업자본의 은행 소유를 허용하지 않겠다는 원칙을 고수해왔다.

전면적인 금융시장개방 뒤에도 이 원칙이 지켜진다면 외국 금융기관과의
경쟁결과는 뻔하다.

지금도 국내 은행들의 생산성과 수익성이 외국은행 지점들에 비해 비교가
안될 정도로 낮기 때문이다.

조만간 현재 4%인 동일인 은행지분 상한이 상향 조정될지 모른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지분상한이 얼마로 상향 조정되느냐, 또는 내외국인이
동등한 대우를 받느냐가 아니라 누가 실질적으로 은행경영권을 행사하느냐는
점이다.

선택은 은행이 대기업의 사금고가 되지 않게 견제 장치를 하되 소유제한을
풀든지 아니면 제3의 효율적인 자율경영체제를 모색하는 것뿐이다.

외국인 주식투자 한도철폐에 따른 환율 안정, 통화관리 방식의 전환 등도
시급한 과제이며 전면 개방뒤 국내에 진출한 외국 금융기관이 채권투자에
나설때 국내 실세금리 변화가 우리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주목된다.

경제의 핏줄인 금융은 경쟁력강화와 효율향상 못지 않게 안정유지가
중요하다.

그런 데도 정책당국이 일관된 정책방향을 유지하지 못하고 정치적인 압력에
밀렸거나 시간에 쫓겨 깜짝쇼를 하는 인상을 주는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6월 1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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