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 김정희 선생의 고택이 충남 예산군 신암면 용궁리에 자리잡고 있다.

그곳 선영앞에 백송이 한 그루 서있는데 추사선생이 서장관으로 중국에
갔다올때 가져와서 심은 것이다.

예산중학교 8회 졸업생이거나 예산농고 47회 졸업생은 백송회회원의
자격을 갖는다.

대개의 학교동창회를 보면 무슨학교 몇 회 동창회라고 하나 우리들은
모임을 처음 갖기 시작한 1976년부터 백송회라고 명명하였다.

그 이유는 동창회로서 친목을 도모하는 외에 고향의 역사를 알고 사랑하는
마음을 항상 지니며 살자는 뜻에서이다.

총회는 봄과 가을 두번 예산 대전 서울에서 번갈아 열리며 연말에 서울
에서 망년회를 갖는다.

백송회내에 뜻이 맞는 몇몇 친구들의 소백송회가 있는데 예산의 홍성찬
(예산 산업대 학장), 박상준 (혜전대 교수), 이의홍 (예산체육관 관장),
대전의 최석진 (옥천버스 사장), 강진백 (충남대 교수), 김시수 (대전지법
판사), 서울의 김시봉 (세무사), 정동근 (대한항공), 이종배 (서울은행
지점장), 필자 등이 주멤버다.

우리들은 고향을 사랑하려면 고향의 역사와 뿌리를 찾아야 한다는
생각하에 시간이 날때마다 역사의 현장을 답사하고 토론한다.

백제 최후의 부흥운동 항전지 임존성 답사, 추사고택에 전해오는 지명고,
고려멸망후 이성계에게 군민전체가 불사이군하므로 예를 안다하여 고산의
지명이 예산으로 변하였다는 전적조사. 윤봉길 의사는 테러리스트가 아니라
농민운동의 선구자였다는 사실구명 폐허가 되어 잡초만이 우거진 좌익사상가
발헌영의 생가터 답사. 향천사의 샘물에서 좋은향내가 나므로 그곳에 절을
짓고 향천사라 하였다는데 샘물에서 정말 향내가 나는가 답사. 삼남의
보부상 집합소가 수덕사 입구인 덕산에 있었던 사실 확인. 국민학교
교과서에 나오는 의좋은 형제이야기(형과 아우가 서로 볏단을 몰래 갖다
주다가 달밤에 마주치자 부둥켜 안고 형제의 우의를 다졌다는 이야기)가
대흥면 딴산밑에 실제로 있었던 얘기라고 하며 그 기록을 찾아 보려고
동분서주하는 등 고향곳곳에 스며있는 역사의 향기를 맡으려 나선다.

아직도 우리 모임이 답사 연구할 곳은 끝이 없다.

우리들은 새로운 향토지를 발간할 계획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6월 1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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