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모방송사에서 주최한 여성취업박람회 기사를 보았다.

그전 중소기업 취업박람회 성과에 힘입어 내친 김에 여성취업에까지
관심을 보여준 것이 내심 반가웠다.

사실 지난해부터 여성전문채널인 케이블 방송 GTV에서 다양한 여성관련
프로그램과 이벤트를 기획, 진행해오며 가장 염두에 두고 있던 것이 바로
여성취업박람회처럼 여성의 사회진출을 도와주는 행사를 마련하고자하
는 것이었다.

그러한 행사가 지속적으로 있어 여성들의 취업을 도와주는 것이
바람직하겠다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여성이기 이전에 인간이라고,
성구별적용어를 거부한다고 오랫동안 주장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여성정치인
여성경제인하는 성구별적 용어가 사라지지 않는 것처럼 여성취업박람회라는
행사 역시 그 제목부터가 씁쓸하기 그지없다.

내가 대학 졸업을 앞두고 부푼 가슴으로 사회에의 첫발을 기대하고
있을 때, 그러니까 지금부터 17년전의 일이다.

그때 모광고회사의 임원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말을 들었다.

그 말은 내가 여성으로 태어나 최초로 느낀 사회의 벽이었고 좌절이었다.

"우린 신입사원을 뽑으면 2년은 그냥 투자기간으로 생각합니다.

회사돈으로 일꾼을 키우는 거죠.

그런데 2년후 이제 본전을 뽑아야겠다고 생각할 때, 그때 여자들은
결혼을 합니다.

그만두거나 계속 직장을 다니더라도 한 발은 남편과 시댁에, 한 발은
직장에 걸치게 됩니다.

100% 전력투구해도 살아남을까 말까한 직장에서 여성들은 상품가치가
없지요"

17년간 우리 사회는 얼마나 비약적인 발전을 했는가.

"목에 힘주는" 나라가 되었지만 여성에 대한, 여성취업에 대한 사회의
편견은 17년전 그 광고회사 임원의 말에서 몇보나 더 발전했을까
생각하면 회의적인 생각이 든다.

그때 우리는 그러한 성차별적 선입견의 대부분은 우리 선배들의
잘못으로 돌렸으며 이제 앞으로는 우리의 역할에 달려 있다고 스스로
다짐했었다.

그러나 정말 힘들게 사회에서 "티 안내며" 직장생활을 해 온 선배들도
지금 후배들을 위해 그리 넓은 길을 닦아 놓은 것 같지 않아 할 말이 없다.

고작 "여성취업박람회"같은 행사나 구상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여성취업률 몇프로 하는 수치를 보면 외형적으로 전보다 많이 달라졌다고
말들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시대 여성취업의 진짜 문제는 꽃다운 나이의 여성들중
몇프로가 사회진출을 했는가가 아닌 다른 곳에 있다.

취업후 40세, 50세가 되도록 사회인으로서의 역할을 갖고 성취감과
성공을 꿈꾼다는 것, 남자들에게는 너무도 당연한 삶의 기본권이
여성들에게는 혹독한 피눈물을 요구한다.

육아때문에, 남편의 직장때문에 피치못할 사정으로 직장을 떠나야
했던 여성들의 사회 재진출은 원천봉쇄되어 있다.

그들의 남자동창생들이 이미 주역이 되어 회전의자를 차지하고 있는
이 사회가 그들의 문 두드리는 소리에는 귀조차 기울여 주지 않는다.

"레이디 퍼스트"등의 양보미학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여성들이 가진 능력만큼을 인정하고 펼칠 수 있게 기회를 주는 것,
여자이기 이전 사회인으로서의 야망을 꿈꿀 수 있게 도와 주는 것,
혼자 넘어야할 가파른 산 앞에서 좌절할 때 손을 내밀어 주는 것,
조금만 따뜻한 시선을 돌려준다면 "취업 2년후 여자는 결혼을 합니다"하는
무책임한 소리는 나오지 않을 것이다.

여자가 혼자서 결혼을 하지는 않을 테니까 말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6월 1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