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륜을 더하면 나이값을 해야지 새 국회는 15대 나이테에 어울리지 않게
개원벽두부터 새 기록을 세우며 손가락질을 받는데 바쁘다.

엊그제 그 꼴인 의사당 안을 더 구경할까봐 견학온 초등학생들을 부랴부랴
돌려보낸 해프닝은 대한민국 국회의 현주소가 어디멘지 말해준다.

최고령자를 임시의장으로 정한 국회법 취지가 막연히 장유유서란 유교
윤리만은 아니고 일을 신중하게 처리하자는 염원을 담았을 터이다.

그런데 그를 빈틈으로 이용, 야와 여가 질세라 번갈아 잔꾀를 내서 줄을
맞서 밀고 당기고 헤어짐을 반복하는 모양새는 한마디로 한심해 할말을
잊는다.

기왕에 그런 몸싸움의 장기 덕으로 다선을 자랑하는 듯한 모모 의원들의
낯익은 뻔뻔스런 얼굴들은 이제 지겹기까지 하다.

그러나 더 실망스럽기론 새바람을 넣으리라 호언하던 많은 초선들이
공격조와 저지조로 징발된 현상이다.

속으론 어떤지 몰라도 한술 더떠 일취월장 익숙히 구악에 오염돼가는
생생한 모습은 정치 장래에 마저 실망을 안겨준다.

솔직히 그걸 바라보는 국민들은 여야 와 선후를 가려 잘잘못을 따지기
조차 신물이 난다.

당초 무소속을 빼면 여-야 모두 과반 미달인 소위 여소야소 의석분포에
대해 당연히 신한국당도, 국민회의도 그 속에 담긴 국민의 뜻을 천착하며
반성하고 분발함이 옳았다.

아뿔싸, 그렇기 커녕 한쪽은 한점 거리낌없이 단시간에 의석을 늘리려
달래고 어르느라 법석을 떠는가 하면 거기 맞선 방어 또한 아이들이
병정놀이 꾀를 짜는데 젖먹던 힘을 다하듯 여-야 똑 같이 철없는 놀이를
일삼고 있다.

문제는 그러느라 국회가 본업을 망각하는 것이다.

시급히 의논하고 입법하고 힘을 모아야 할 내적 외적 국사가 산적한데
거들떠도 보지 않고 잇다.

14대 국회의 실수를 고쳐 저소득층의 감세를 반영할 소득세법과 배타적
경제수역법 제정을 비롯 당장 시각을 다뤄 대기중인 것이 19법안에 20여
정책 현안이란다.

말이 통일준비 국회지 식량원조네, 서해 침범이네 토론할 북한 문제가
저렇게 쌓여도 의회에선 손을 논채 있다.

국제수지 악화 등 경제에 적신호가 켜진지 언제인데 오불관언, 오로지
대권에 거염스런 당지도부의 눈에 날까 무서워 여-야 의원들이
공격-저지조로 나뉜 싸움판에서 무공 세우느라 앞을 다투고 있다.

따지고 보면 어느새 국민까지 모두 망각한 명제가 있다.

그것은 체력 완력 폭력 무력이 아니라 말, 즉 언어의 토론이 의회정치의
생명인데 그 의회안에서 완력은 절대적 관행처럼 허용하고 있다.

이젠 여-야 불문 의사중 사지의 힘으로 대결하는 의원에 일정기간
자격정지 등 엄중 제재를 가할 시기가 왔다고 본다.

본래는 국회의장이 정부나 정당으로부터 엄정 독립, 의회내 유일 최고의
권위를 갖는다면 의원의 궤도 이탈적 언행을 그 책임아래 제지하고 처벌하면
된다.

그러나 불행히 지금 대치중인 원구성의 의장 선출도 실은 원격조정 각본
놀음이라는데 문제의 뿌리가 있다.

최소한 임기중 의장의 무당적 만이라도 실현하지 않고는 시녀란 조소를
못 피한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6월 1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