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월드컵 축구경기의 한-일 공동개최가 결정되었다.

비록 단독개최는 아니더라도 뒤늦게 뛰어든 우리 입장에서 볼때 한국이
공동개최지로 선정되었다는 것은 매우 경사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2002년 월드컵개최와 함께 우리경제가 안고 있는 어려운
문제가 산적되어 있다는 것도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

우선 무엇보다도 월드컵 축구가 개최되는 2002년까지의 향후 6년동안
우리는 월드컵 축구를 포함해서 세계적인 대규모 행사를 4건이나 치러야
한다.

내년에 열리는 유니버시아드대회, 2001년의 아시안게임, 2000년의 ASEM
정상회의등 거의 매년 개최되는 매머드 국제회의를 치르는데 엄청난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

물론 각각의 국제경기행사가 그 자체로 해외관광객유치와 광고수입등을
통해 수익성을 보장할수 있을는지 모르지만 그보다는 이들 행사에 앞서
소요되는 엄청난 투자자금을 어떻게 조달하느냐가 문제다.

추진단체들의 추계에 따르면 한가지 국제행사를 치르는데 소요되는 투자는
약 2조~3조원이 든다고 한다.

향후 5~6년동안에 이들 행사에 약 10조원 안팎이 소요되는 셈이다.

이들 국제행사만을 한다면 큰 문제는 아니다.

이 기간동안에 추진되어야할 다른 국책사업이 적지 않다.

이미 확정된 국책사업에 소요되는 자금이 이 기간동안 무려 60조원이
넘는다.

경부고속 철도, 영종도 국제공항건설, 40억달러에 달하는 대북 KEDO 지원,
자주국방을 위한 F16 차세대 전투기사업, 위성통신사업, 물류비용 절감을
위한 유통단지 건설및 SOC사업등 연간 정부예산의 약 2배에 해당하는 대규모
사업들이 같은 기간에 맞물려 있다.

그뿐 아니다.

우리는 지금 남북통일을 바라보는 숨막히는 시기에 접어들고 있다.

최근 여러 정보소식들은 북한 붕괴가 다가오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남북통일을 대비해서 우리는 지금부터 엄청난 규모의 통일비용을 생각하지
않을수 없다.

이렇게 볼때 우리는 2002년 월드컵 축구경기가 이 땅에서 치르게 된다는
세기적 기쁨과 함께 이토록 방대한 규모의 자금을 어떻게 조달할 것인가를
우려하지 않을수 없는게 사실이다.

솔직히 말해서 우리는 스포츠축제와 문화 예술축제등 우리 분수에 넘치는
국제행사가 너무 많다는 것을 느낀다.

마치 스포츠 만능국처럼 착각할 때도 있을 정도다.

국민소득 1만달러 수준에서 볼때 우리경제에 엄청난 부담과 국민소비성을
자극하는 대규모 행사들이 줄을 이어가고 있다.

물론 경제발전단계에서 많은 스포츠와 문화 예술축제가 국민에게 삶의
보람과 국위선양에도 크게 기여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다른 어떤 나라의 경우에서도 이토록 많은 국제행사가 거의 같은
기간에 한꺼번에 치러진 예는 없다.

더욱이 우리경제는 지금 매년 누적되어가는 국제수지의 역조현상에서
세계에서 네번째로 많은 대외부채를 안고 있는 나라이다.

이대로 가면 향후 2~3년내에 1,000억달러를 넘는 대외부채에 허덕이게
될는지도 모른다.

그뿐인가.

작년 한해에 1만5,000여개의 중소기업이 도산했고 지금도 하루에 50여개의
중소기업이 쓰러지고 있는 실정이다.

산업이 공동화되고 무역수지 역조가 확대되어가는 마당에서 우리경제가
그토록 많은 세계적 축제행사를 놓고 흥분할 수있는가에 대해 우리는 다시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더구나 지금 밀려오는 개방화의 압력 속에서 우리국민의 소비성향은 그
어느때 보다도 높이 치솟고 있다.

국민의 흥분을 자극하면 그만큼 나태하기 쉽고 젊은층의 근로의욕은 감퇴
되게 마련이다.

지금 세계 모든 나라는 21세기를 바라보는 국가적 테마를 걸고 있다.

무한경쟁시대를 뚫고 나갈 경제민족주의 정기가 세계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다.

겨우 1만달러 수준에서 우리처럼 이토록 흥청거리는 민족이 이 지구상에
또 어디 있겠는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월드컵 축구도 좋고 ASEM 유치도 좋다.

다만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사실은 이제 우리경제가 한번 넘어지면
도와줄 나라가 없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의 처지를 볼때 참으로 걱정되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철저한 개인주의 쾌락주의가 하늘높이 치솟고 있다.

하늘을 뚫는 축제 속에서 출렁이는 군중들이 그들의 삶의 바탕이 얼마나
어려워져가고 있는지를 알리가 없다.

늘어만 가는 사치생활, 고급화되어가는 소비취향, 보편화되어가는
향락주의속에 몰락되어가는 역사의 파국을 바로 보아야 한다.

이제 사방을 보아도 아무도 우리를 도와줄 이웃은 없다.

역사의 비정과 좌절이 있을 뿐이다.

우리는 이제 다시한번 허리띠를 졸라 매고 내일의 진실한 삶의 터전에서
실속을 챙겨나가는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해 나가야 한다.

그런 뜻에서 다가오는 모든 국제적 축제행사도 차분하고 실속있게 치러
나가도록 해야 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6월 1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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