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란지교.

영지와 난초 같은 향기로운 사귐이라는 뜻으로 벗 사이의 맑고도
높은 사귐을 이르는 말이다.

고향도, 출신 학교도, 하는 일도, 심지어 취미도 다른 사나이들이
이해타산 없이 순전히 개개인이 지니고 있는 인간적인 향기에 끌려
20여년을 한결같은 마음으로 나누는 우정을 나타내는 말로 지란지교보다
적당한 표현이 또 있겠는가.

1975년 ROTC소위로 임관하여 105연대 군문으로 첫 발을 디디면서
우리는 만났다.

개성과 자존심이 강한 국제신사 (장교를 일명 국제신사라 부른다)들의
첫 만남은 무척 서먹서먹했으나 2년간 군생활을 하면서 희로애락을
나누다 보니 각자의 향기를 느낄수 있었고 알게 모르게 정이 들었다.

언제나 우리들의 휴식처가 되던 주천 삼거리 막걸리집.

라면 삶아 놓고 마셔대던 냉막걸리 맛은 지금 생각해도 짜릿하다.

그 때는 안주 없는 텁텁한 막걸리도 꿀맛이었는데, 어느 틈에 좋은
술, 좋은 안주 앞에서도 건강을 먼저 생각하는 나이가 되어버렸다.

105연대에서 만났다 하여 "105R회"라 칭한 우리들의 모임은 특별한
회칙이나 규정은 없다.

뿐만 아니라 모임의 시기나 회비 조차 일정하지 않다.

그냥 문득 친구가 생각날 때,문득 옛날이 그리워질 때, 누구라도
"집합"을 외치면 만사 제쳐놓고 달려온다.

부부가 함께 만나 맥주를 마시면서 황금빛 낭만에 취하기도 하고,
극장에서 명화를 보며 감상적인 분위기에 젖어도 보고, 산을 오르면서
자연에 동화되어 일상의 피로를 풀어버리기도 한다.

또 때로는 아이들을 데리고 역사 유적지를 탐방하면서 선조들의
지혜를 배우고 자녀 교육에 대해 진지한 토론을 하면서 우정의 나이테를
불려간다.

우리는 장교의 주요 책무인 솔선수범과 책임감의 정신으로 사회의
각 분야에서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

대한항공 프랑크프루트 화물지점장 김진흥,울산에서 유통 건설업을
하는 (주)건웅 전무이사 김호구, 일양익스프레스 서소문사무소장
신주현, 삼보컴퓨터 이사 이윤식, 쌍용자동차 개발계획실장 이태곤,
마일엔지니어링 대표이사 임항빈, UNIVERSE 특허법률사무소장 조용식,
하는 일은 달라도 우리의 이야기 꽃은 언제나 한 곳으로 귀착되고,
20대의 혈기왕성한 청년으로 돌아가서 사위어가는 사랑과 정열의 불씨를
되살려내며 희희낙낙 나다.

그래서 추억이 현실보다 아름답다하였나 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6월 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