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동에 가면 화랑이 많다.

그중 오래되고 괜찮은 곳이라면 "경인미술관"을 꼽아야 한다.

경인미술관은 양옥과 한옥, 세개의 전시실을 갖추고 있었다.

미술관계 잡지도 잘 만들어 냈다.

다른 어느 미술관보다 운치도 있었고 많은이들이 사랑하는 장소였다.

"찻집"과 "한옥" 전시실이 있었기 때문이다.

경인미술관의 한옥전시실은 제3전시실이었다.

옛날의 고급한옥들도 하나둘 모두 사라지던중 이 한옥은 남아서
그림 전시실로 사람들에게 보여지니 얼마나 좋던가.

많은이들이 그림도 보고, 한옥의 귀함도 배우고, 도심속에서 휴식도
취하고.

그런데 이번 서울길에 경인 미술관을 찾아가니 그 집이 헐리고 땅은
파헤쳐지고 있었다.

자기집 자기 마음대로 하는데 누가 뭐라고 할수 있을까만 주제넘은
까닭일까, 그 앞에서 살이 뜨거워 지는 것은 어쩔수 없었다.

내땅에서 살지못하고 남의땅으로 이주해 사는 처지이면서도.

재작년 서울에 와서 시화전을 했었다.

입양고아 시인 및 흑인시인과 함께 한 3인 시화전이었다.

그 1년전에 경인미술관 제3전시실, 바로 그 한옥 전시실을 계약했고
1년후인 재작년 봄에 와서 1주일간 "서울호전"이라는 시화전을 했었다.

천장에 석가래가 보이는 건물안에서 내가 시화전을 할수 있었다는
행운.

그 행운을 다시 꿈꾸고 싶었는데.

바로 그 건물이 무참하게 헐리고 있는 모습.

이번 서울길은 여러가지로 허망하다.

그다지 나이가 많은 것도 아닌데 박재삼 선생님의 위독하심을 보아야
했고 또 여기저기 멀쩡한 집들이 헐리고 있음을 보고 들어야 했다.

방배동의 꽤 좋은 집에서 살던 친구를 만났다.

분당의 아파트로 이사갔단다.

그 좋은 방배동집을 어쨌느냐 했더니 팔았단다.

방배동에서는 두집을 사서 헌 뒤 빌라를 짓는 바람에 어쩔수 없어
그랬단다.

아니 얼마나 잘지은 집이었는데, 그걸 헐고 빌라를 짓는가?

몇년전엔 튼튼하게 지어져 있던 "아랍문화원"이 헐리는걸 보았었다.

또 광화문네거리, 한때는 유명했던 모회관도 헐리고 있었다.

지금은 그자리에 뻔쩍이는 빌딩이 서있지만 불과 20~30년사이에 몇차례
새로 짓는걸 보아야 하다니.

내가 사는 뉴욕의 아파트는 서민아파트인데도 50년이 더 되었다.

49년에 기초한 초석이 박힌 돌이 있는 건물이니까 그걸 알수 있는데.

어쩌면 불과 십년도 안된 건물에서 살듯이 사람들이 헐어지을 생각은
상상도 하지 않으며 지낸다.

각각 사정이 있고 그렇게 새건물을 헐어내야 하는 입장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겨우 십여년만에 엄청난 돈을 들여 지은집들을 허문다는
것이 이해가 안된다.

호화주택을 헐어 빌라를 짓는다는게 이해가 안된다.

현관앞에 몇개의 계단을 만드는데도 땅을 내 키의 두배만큼 파고
기초를 하는 뉴욕의 아파트를 생각한다.

50년 넘은 건물들이 몇년 안된 것처럼 보이는것도 그 때문일 터이다.

사람도 오래 오래 살으리라 믿는 그들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 오면 새집도 호화판도 오래오래 간직해야 할것도,
어느새 헐리고 없어지고 마는걸 본다.

이제 남아날게 없구나.

오히려 외국에 가서 그곳에 전시된 우리나라것을 보게 되는 것은
당연하구나 싶다.

서울에 올때마다 변함없는 인심과 변함없는 친구들을 보지만 한편에서
있어야할 건물들이 사라지는 것을 보면서 언젠가 있어야 할 마음도
사라질 것같아 아슬아슬하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6월 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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