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류대학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투금 증권 투신등 금융기관에만 8년째
다니는 박대리(35).

경력만 보면 누가봐도 금융전문가다.

하지만 실제 경험은 영 딴판이다.

박대리가 겪은 재테크 실패담을 들어보면 그는 "돈놀이"에 관한한 "억세게
재수없는 사나이"다.

박대리가 주식에 손댄 건 증시가 마지막 활황세를 타던 지난 88년.

당시 다니던 투금사에서 나눠준 우리사주 3,500주가 화근이었다.

증권사에 있는 동창의 "한번 팔아보라"는 권유로 4,500만원을 받고 매도
했다.

여기에 신용 1,000만원을 일으켜 모두 5,500만원을 갖고 개미군단 대열에
합류했다.

투자대상은 지방은행 주식.

다가오는 지방자치시대에는 아무래도 지방은행이 발딱 일어설 것이라는
예측때문이었다.

박대리는 주식투자 규모를 91년 직장을 옮기면서 퇴직금 1,500만원과
주택구입용 은행차입금 2,000만원까지 합쳐 총 8,000여만원으로 불렸다.

그러나 91년부터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그해에 주가가 시름시름 힘을 잃더니 "날개없는 추락행진"을 계속했다.

증권객장 전광판이 온통 파란색으로 변하더니 순식간에 2,000여만원이
날아갔다.

그래도 이때만해도 박대리는 여유가 있었다.

이런 여유만만함도 91년말이 되면서 완전히 사라졌다.

남은돈 3,500만원과 퇴직금등을 합해 모두 6,000만원을 "신한인터내셔널"에
집중시켰으나 이 회사가 부도를 내버렸다.

기관투자가들이 이 종목을 사들인다는 소문을 듣고 투자했던 것이 화근이
된 셈이다.

증시에 날린 돈을 보전하기 위해 그는 있는 돈 없는 돈을 긁어모아 지방의
복덕방을 기웃거렸다.

총 1억원을 갖고 충남 서산에 있는 임야와 논밭 7,000평을 사는데 성공
했다.

하지만 6공말기에 강력한 부동산투기억제 정책이 나와 해당 부동산이
토지거래허가지역에 묶이면서 박대리의 마지막 희망도 꽁꽁 묶였다.

복덕방에 땅을 내놓아도 살 사람이 없는 것은 물론 호가는 매입가의 절반
이하로 곤두박질쳤다.

요즘엔 절벽에서 떨어지는 악몽까지 꿀 정도다.

이미 때늦은 일이지만 박씨가 주식에 쏟아부었던 8,000만원만 갖고 은행
정기예금(금리 연10%로 가정)에 넣었다고 계산해 보자.

현재 원리금은 1억3,000여만원.

5,000만원을 벌 것을 거꾸로 주식투자로 5,000만원을 날린 셈이니 꼭
1억원을 잃어버린 셈이다.

그것도 부동산은 빼고다.

< 박준동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5월 3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