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전까지만 해도 올해 경제전망을 낙관하던 정책당국이 최근들어 갑자기
허둥대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직접적인 계기는 국제수지적자에 안일하게 대응하고 있다는 김영삼대통령의
질책 때문이지만 기본적으로 2.4분기 이후 경제동향이 예상보다 빨리 악화
되고 있는 탓이 크다.

올 1.4분기까지 두자리 수를 유지했던 수출증가율이 지난 4월에는 한자리
수로 떨어지더니 5월에는 아예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이에 따라 지난 4월까지 통관기준 무역수지 적자가 이미 60억달러를
넘었으며 1.4분기중 경상수지 적자도 41억달러에 달했다.

1.4분기가 지나면 괜찮아지리라는 정부측 기대와는 달리 갈수록 사정이
나빠지고 있는 셈이다.

우리 경제를 선도하는 수출이 이렇게 위축되고 있으니 경제전망이 밝을리
없다.

한 예로 한국은행이 지난 27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생산(GDP)
기준으로 올 1.4분기 실질 경제성장률이 예상보다 훨씬 높은 7.9%를
기록했음에도 불구하고 2.4분기 경제성장 예측치를 7%로 낮춰 잡은 사실을
들수 있다.

지난해 3.4분기부터 설비투자가 급격히 줄고 최근에는 수출마저 부진해
그동안 우리 경제의 고도성장을 주도해온 중화학제품 수출증가와 이에 따른
설비투자 확대를 전혀 기대할수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난 1.4분기 성장률이 기대보다 높았던 것은 재정지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5.8%나 늘어나 작년보다 2배이상 증가했으며 특히
정부부문의 건설투자가 17.2%나 늘어난 탓이 크다.

아직까지는 건설투자나 민간소비 증가세가 높아 올 상반기중의 경제지표는
괜찮겠지만 엔저 현상이 우리수출에 영향을 미치는 6~7개월의 시차를
고려하면 하반기 이후 경제사정이 상당히 어려워질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벌써부터 경기 연착륙이 어렵다고 보고 주가가 크게 떨어졌으며
대통령의 특별지시 이후 관계당국도 대책마련을 서두르고 있다.

하지만 성장 물가 국제수지라는 세마리 토끼를 모두 잡기는 쉽지 않다.

먼저 건설투자나 민간소비와 같은 내수 주도의 경제성장을 추진하는 것은
성장내용이 좋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잠재해 있는 물가 불안심리를 자극하고
국제수지 개선에도 보탬이 되지 않기 때문에 바람직하지 않다.

일부에서 조심스럽게 거론되고 있는 총수요 억제를 통한 국제수지 개선
방안도 문제점이 많기는 마찬가지다.

물가안정기조를 흐트리지 않는 것은 좋으나 가뜩이나 불안한 경기 연착륙을
어렵게 하고 국제수지 개선도 크게 기대할수 없기 때문이다.

1.4분기중 재정지출이 많아 더이상의 재정긴축은 어려우며 총통화 증가율이
낮아 통화환수는 금리수준만 높이기 쉽다.

설비투자도 이미 냉각됐고 소비재 수입억제는 별 효과도 없이 통상마찰만
일으킬 가능성이 많다.

결국 방법은 수출촉진을 통해 경제성장을 유도하고 국제수지를 개선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기 위해서는 주력 수출품의 고부가가치화나 다양화도 필요하지만
당장은 적정환율 유지가 관건이다.

가격경쟁력을 바탕으로 하는 수출주도의 경제체질이 하루아침에 바뀌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정책당국의 냉철한 판단과 신속한 대응을 기대해본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5월 29일자).